경찰, 5 ·18 기소촉구 대회 무차별 진압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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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소촉구 시민·학생 마구 폭행…12·12 기소 투쟁 때와 대조
5·18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인 8월16일에 개최된 ‘5·18 불기소처분 규탄 및 기소 촉구 3차 국민대회’(국민대회)장에 경찰이 난입해 취재기자들을 집단 폭행하고 시민·학생에게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는 과잉 진압을 펴 말썽을 빚고 있다.

이 날 경찰은 현장을 취재하던 <중앙일보> 장문기씨(32) 등 사진기자 4명을 집단 폭행했으며, 폭행 당한 뒤에 실신해 있는 장기자를 둔 채 철수하면서 그에게 가스탄을 터뜨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 날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열린 국민대회가 사전에 신고를 한 합법적인 집회인데도 ‘시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회장에 난입해 무력 진압했으며,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학생 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기자 폭행에는 신속히 사과

경찰은 또 이 날 집회를 마치고 각 대학에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게 무차별로 최루탄을 난사해 그 과정에서 장원호군(25·단국대 경영 2)이 최루탄에 맞아 실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장군은 오후 8시쯤 한양대 앞길에서 동료 학생 천여 명과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왼쪽 눈을 맞아 한양대병원으로 옮겨져 다음날 새벽 수술을 받았으나 한쪽 눈이 끝내 실명했다.

지난 8월6일에는 서울대 농대생 등 ‘경기남부지역 통일선봉대’ 소속 대학생 39명이 경기도 안산시에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홍보 활동을 펴다가 안산경찰서 소속 전투경찰 백여 명으로부터 일명 ‘칙칙이’라고 불리는 최루액 가스를 뒤집어쓰고 온몸에 피부염과 화상을 입어 집단으로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 중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안산경찰서는 피해 보상 문제를 따지러 안산서를 항의 방문한 김성환(21·서울대 농업토목 2)·유대광(22·경기대 경제 3) 군 등 부상 학생들에게 다시 최루액 가스를 살포해 2차 화상을 입힌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경찰은 8월17일 오후 2시쯤 경찰의 5·18 국민대회 강경 진압을 따지러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 등 5·18 국민위원회 소속 단체 회원 17명을 27시간 이상 인근 서대문경찰서에 불법 구금하다가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일자 이 중 일부를 즉심에 넘기거나 훈방했다. 서대문경찰서는 연행한 17명 가운데 박기학씨(전국연합 정책실장) 등 10명을 다음날 오후 6시가 넘어 훈방했으며, 이철상씨(29) 등 7명에 대해서는 경범죄처벌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즉심에 넘겨 벌금을 물렸다.

이 날 경찰청을 방문했던 전국연합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이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구둣발로 폭행하는 등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으며, 특히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민원실에 들어간 시민까지 강제 연행해 25시간 동안 강제 구금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피켓을 들고 도로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 통행에 불편을 줘 불가피하게 연행했는데, 조사에 응하지 않아 구금 시간이 길어졌다. 이 가운데 마이크와 피켓을 들고 있던 7명은 즉심에 회부하고 나머지는 훈방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최근 검찰의 5·18 불기소 처분과 관련해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보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우선 지적되는 것은 언론과 시민·학생 들에 대한 경찰의 ‘차별대우’이다. 서울경찰청은 기자 폭행에 대해서는 언론과 정치권의 비난이 일자 비교적 신속하게 내부 조사를 실시했다.

경찰은 8월19일 2기동대 23중대 소속 의경들이 기자 폭행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내, 이재교씨(22) 등 의경 6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조정래 경감 등 현장 지휘자 5명을 지휘 책임을 물어 징계위에 회부했다. 안병욱 서울경찰청장은 그에 앞서 장기자가 입원한 강북 삼성병원과 <중앙일보> 편집국을 방문해 폭행을 사과했다.

그러나 경찰은 한 대학생의 한쪽 눈을 실명케 하고 십수 명의 여학생에게 흉터가 남는 화상을 입힌 대형 사고에 대해서는 눈 한번 깜박 안하는 대조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현재 장원호군을 실명케 한 직격탄 발사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나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양대 총학생회 등 학생들은 그날 밤 경찰이 교정을 향해 직격탄을 쏘는 장면과, 직격탄의 불꽃이 궤적을 그리며 어둠을 가르는 장면을 생생하게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증거로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장 ‘시위진압 성공’ 격려

한편 최루액 분사에 대해서도 현장 경찰병력을 지휘한 안산서 백석천 경비과장은 “불법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로부터 5~6m 떨어져 근접 가스분사기로 최루가스를 분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안전수칙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화상을 입은 진유진군(21·한신대 철학 2)은 “웅크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1~2m 정도의 거리에서 살충제를 뿌리듯 최루가스를 집중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날은 경찰이 최루액을 뿌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출동한 안산서 방범순찰대 소속 의경 백여 명은 안산시 고잔동 버스정류장에서 안산역 집회에 참석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을 셔터가 내려진 상가 벽쪽으로 몰아붙여 3면을 포위한 뒤, 도망가지 못하고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최루가스를 뿌렸다.

학생들의 집단 피부염에 대해서도 백석천 과장은 최루가스 때문이 아니라 여러 날 잘 씻지 않아 생긴 병이며, 경찰 쪽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피해 보상과 관련해 서장 면담을 요구하다 2차 화상을 입은 유대광군의 치료를 맡고 있는 성수의원(서울 성수동) 양길승 원장은 “독성 화학물질로 생긴 화학적 화상을 잘 씻지 않아서 생긴 피부병이라고 우기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 이하의 발상이다”라고 일축했다. 또 학생들의 1차 치료를 맡은 희망의원(안산시 본오동) 의사 장상유씨는 “특히 여학생들의 피해가 심했다. 수포가 많아 목과 얼굴에 흉터가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아래 부상자 사진 참조).
게다가 박일룡 경찰청장은 5·18 국민대회에 대한 과도한 진압으로 비판 여론이 이는 가운데서도 “이번 집회에서 시위진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치하하면서 “앞으로도 각종 집단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격려하는 전언통신을 일선 경찰관서에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 최고 책임자의 이같은 ‘격려’는 80년 5·18 이후 군경에게 수여한 이른바 ‘국난극복기장’과 진압 지휘관들을 포상한 각종 무공훈장을 연상케 한다. 야당 일각에서는 이같은 격려가 92년 대선 당시 부산시경국장으로서 초원복국집 기관장 모임에 참석했으면서도 김영삼 정부 들어 승진 가도를 밟은 박일룡 청장의 전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전국연합은 이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5·18 학살자 기소를 촉구한 대회장에 난입하여 시민과 학생 그리고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폭행한 사건은 군사 독재 시절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국민 테러 행위이다. 대회장에 난입해 이성을 상실한 채 단상을 점거하고 시민과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연행한 경찰의 모습은 15년 전 광주 학살을 자행한 공수부대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15년 전의 학살 행위를 규탄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찰이 폭력으로 짓밟음으로써 이 정부는 문민임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경찰 일부에서는 ‘경찰의 역할은 검찰의 정치적 결정(5·18 불기소)에 따른 설거지를 대신한 것뿐’이라는 불만스런 시각도 있다. 결국 넓게 보면 경찰의 과잉 진압과 ‘격려’의 배경에는 12·12와 5·18에 대한 현 정부의 차별 인식과 그에 따른 ‘차별 대우’가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현 정부는 군에 대해서도 12·12 관련자는 전원 옷을 벗겼으면서도 5·18 관련자는 문제 삼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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