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한 주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6.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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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2년‘흑백 동거’ 종지부

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78)과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부통령(60)이 2년 간의 ‘불안한 동거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지난 9일 데 클레르크가 이끄는 백인 정당 국민당이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이끄는 거국 내각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데 클레르크의 탈퇴 선언은 지난 8일 남아공의 상·하 양원 합동회의가 새 헌법안을 승인한 직후에 나왔다. 데 클레르크는 새 헌법 아래서는 94년 총선에서 63% 지지를 획득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6월30일을 기해 거국 내각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48년 이후 남아공을 지배하며 흑인 차별 정책을 펼쳤던 국민당은 소수 백인을 대표하는 야당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89년 집권 이후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는 데 앞장섰던 데 클레르크는 자기가 추진한 정책으로 인해 부통령에서 야당 당수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그리 많지 않다. 5백만 백인이 3천만 흑인을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인종 차별 시대를 마감하고,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조건에서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새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홍콩

차가운 시선 속 갈 곳 잃은 보트 피플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2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홍콩의 화이트헤드 난민수용소에서 벌어진 보트 피플들의 대규모 폭동·탈출 사태가 그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75년 4월30일 베트남이 공산화하자 뗏목에 몸을 싣고 망망 대해로 떠난 사람들은 80만명 정도이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캐나다·프랑스 등지로 망명했지만, 난민으로 분류되어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각국 난민 수용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 숫자는 대략 11만5천명. 이 중 8만명 정도는 유엔과 해당 국가로부터 정착 지원금을 받고 베트남에 돌아가 정착했고, 나머지 3만5천명이 아직도 홍콩·태국·말레이시아·호주에 흩어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들 정부가 보트 피플을 송환하려고 서두르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때 이들에게 동정적이던 서방 각국은 냉전이 끝나자 차갑게 돌아섰다. 베트남 정부가 97년 아세안 가입을 앞두고 보트 피플을 포용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적 견지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도 사라졌다. 게다가 가장 많은 보트 피플을 수용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내년 7월1일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보트 피플 문제를 매듭짓도록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냉전 시절에 공산주의의 잔혹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던 보트 피플은 이제 각국의 골칫거리로 변모했고, 결국 목숨을 걸고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공산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이 그들의 삶에 응축되어 있다.
인도

선거 뒤 정국 오리무중

‘정치 발전은 경제 발전과 비례한다.’이것은 정치학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이다.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백달러밖에 안되지만, 민주화 수준은 3천달러 수준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근 실시된 인도 총선이 세계인으로부터 관심을 끄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5년 만에 실시된 지난 총선은 가히 이변의 연속이라고 할 만하다. 우선 나라시마 라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인도국민회의당이 참패해 2위로 밀려났는가 하면, 힌두인민당(BJP)은 1위를 차지하고도 집권 여부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2위를 차지한 인도국민회의당이 ‘힌두 제일주의줁를 부르짖는 힌두인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3위를 차지한 국민전선-좌파전선(NF-LF)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그런데 국민전선-좌파전선은 국민회의당과의 연정을 거부해 상황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처럼 정부 구성이 혼선을 빚는 것은 하원 의석 5백45석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각 정파 간의 이합집산이 끝날 때까지 인도 정국은 짙은 안개 속을 헤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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