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감원장 구속은 정국 전환용?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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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통신 기업공개·뇌물 수수 시점 안맞아…“여당 돕기” 의혹 일어
뇌물 수수 혐의로 6월2일 전격 구속된 백원구 증권감독원장 사건은 석연치 않은 측면이 있다. 그가 유양정보통신과 신진피혁을 비롯한 10개 기업으로부터 뇌물로 모두 1억1천만원을 받았다는 검찰 발표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 기업이 기업 공개나 합병과 관련해 혜택을 받고자 그에게 뇌물을 주었다면 1억1천만원이라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다.

실제로 증권감독원이 증권관리규정상 자격도 없는 기업에게 기업 공개를 허용하면서 주식 공모 가격을 천원이라도 높게 책정해 주면 해당 기업의 대주주는 가만히 앉아서 수십억~수백억원을 챙길 수 있다. 백원장이 기업 공개나 합병과 관련한 특혜를 제공한 대가로 기업당 6백만~2천만원밖에 받지 않았다는 것이 별반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백원장은 재무부 차관을 지내는 등 ‘잘 나가는’ 경제 관료였다. 게다가 온화한 성품에 비교적 깨끗한 업무 처리로 후배들의 신망이 높았던 편이다. 그런 그가 고작 1억여 원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팔았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물론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에서 김영삼 정부에서의 관운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금품 수수 몇 달 전 확인하고도 이제야 들춰내

실제로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들과 검찰 간에 의견 차이가 난다. 검찰은 유양정보통신 박양규 사장이 올 3월 백원장 집무실에서 기업 공개를 허용해 달라고 청탁하면서 천만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사장은 기업 공개가 이미 지난해 12월21일에 이루어진 마당에 무엇 때문에 올 3월에 백원장에게 뇌물을 제공했겠느냐고 반문한다. 떡값이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백원장이 받은 돈이 뇌물이라면 구속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이 떡값인 줄 알면서도 그를 구속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공무원의 떡값 수수가 실정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당이 최근 무리한 당선자 영입과 관련해 수세에 몰리자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원장 구속은 갑작스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공식 입장이다. 두 달 전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공직자 사정을 강력히 편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대검 중수부는 그 전부터 경제 부처를 내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대기업·금융기관과 관련된 증권감독원과 은행감독원 그리고 재경원 금융정책실에 수사 초점을 맞춰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검찰 수사는 체계적이지 못하다. 대개가 단발로 끝나는 데다 심지어 여당을 도와주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백원장 구속도 따지고 보면 집권 여당이 국회 개원을 지연시키고 있는 야당에게 ‘밉보이면 잡아들인다’는 식의 ‘검찰 정치’로 정국을 유리하게 주도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의혹은 대검 중수부가 백원장을 갑작스럽게 구속 수감했다는 점에서 증폭되고 있다. 한 대검찰청 관계자는, 익명 투서가 발단이 되어 대검 중수부가 백원장의 금품 수수 사건을 이미 몇 달 전에 확인하고 그동안 덮어두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던 검찰이 무슨 까닭인지 갑작스레 이 사건을 다시금 들추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결국 검찰은 차분한 준비 없이 일을 추진하다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유양정보통신의 기업 공개 시기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백원장이 이 회사로부터 기업 공개 허용 청탁과 함께 올 3월에 천만원을 받았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유양정보통신은 이미 지난해 12월21일에 주식을 상장한 뒤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백원장 구속은 의혹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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