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학원 사찰’ 오보 사건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8.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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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학원 사찰 보도 후 지루한 법정 싸움… ‘조작 문건’ 밝혀지자 ‘사과’ 기사 게재
<한겨레> 신문이 ‘기무사 학원 사찰 여전’이라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보도한 때는 97년 6월19일이었고, 한총련 학생들이 프락치 혐의를 조사한다며 민간인 이 석씨(당시 23세·선반공)를 ‘멍석말이’로 폭행해 숨지게 한 것은 그보다 보름쯤 앞선 6월3일이었다. 그러니까 <한겨레> 보도는 한총련이 이 석씨 치사 사건으로 잔뜩 궁지에 몰려 있을 때 나온 것이었다. 이런 때에 기무사가 법으로 금지된 학원 사찰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으니, 한총련 학생들에게 이 보도는 ‘백년 대한(大旱) 끝에 내린 단비’였을 것이다.

기무사 편제만 알아도 ‘오보’ 쉽게 판명

<한겨레>는 보도하기 3일 전 기무사가 작성했다는 ‘제5기 한총련 출범식 동향 보고서’라는 문건을 입수해 이 기사를 작성했다. 이어 97년 7월호 시사 월간지 <말>도 ‘마감 취재’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이 문건 전문을 공개하는 등 유사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 보도 직후 기무사는 <한겨레> 등에 정정 보도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 1년여 동안 송사를 벌여 왔다. 그런데 이 문건은, 대학 운동권 출신으로 공군 방공포 부대에 입대한 공종배 병장(23·인제대 미생물학과 93학번)이 날조한 것이었다.

기무사에는 기무·보안·방첩 3개 처가 있다. 그런데 <한겨레>가 입수했다는 기무사 보고서에는, 이 문건을 담당하는 부서가 작통처임을 나타내는 ‘참조:작통처장’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작통처장은 ‘작전통제처장’의 약자로, 기무사에는 없고 공군 방공포사령부에만 있다(공군 작전사령부에는 작전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국방부 출입 기자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이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와 데스크는 자신들이 옳다며 지루한 법정 싸움을 벌여 왔다.

NL(민족 해방) 계인 인제대의 ‘활동가 조직’ 출신 공병장은 부대 행정반에 혼자 있던 97년 6월2일, 컴퓨터에 저장된 자기 부대 공문서 양식을 불러내 기무사 문건으로 조작했다. 이때 기무사 편제를 알지 못한 공병장은 원문서에‘참조:인행계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참조:작통처장’으로 바꾸었다. 이어 가공 인물인 ‘허재영 중령’을 문서 통제관으로 기재했다.

대외비일 경우, ‘대외비’ 도장을 문서에 한 번만 찍는 것은 군에서는 상식이다. 그런데 공병장은 대외비 도장을 문서 상·하단에 2개 찍었다. 이어 공병장은 공군본부가 발행하는 계간지 <공군>에 실린 학생운동 분석 기사를 정리해, 마치 기무사 요원이 직접 대학가에 들어가 자료를 수집한 보고서처럼 문서를 꾸몄다.

지난 6월16일 기무사가 이런 사실을 밝혀내자, <한겨레>는 다음날 ‘문건과 증언을 다각도로 취재한 결과 조작으로 확인되었다. 사실 확인 미흡에 대해 사과한다’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그러자 6월19일 <한겨레> 여론 난에 아주 따끔한 독자 편지가 실렸다. 이 독자(대학생)는 <한겨레>가 추적해서 공병장이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다면 즉시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이지, 왜 기무사 수사 발표가 있을 때까지 미루었느냐고 질타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되었던 한총련의 도덕성 부재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공적인 기능을 하는 언론기관이 체제 수호 세력은 무조건 틀렸다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실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공정한 보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언론계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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