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종 서울시 교육감 인터뷰 “학생 폭력 잡으려다 학교 교육 실종될 판”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7.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경 일벌백계식 처벌 문제”… “사회·가정이 탈선 조장장”
최근 들어 중고생들이 포르노 비디오(일명 ‘빨간 마후라’)를 직접 제작하고 학교 폭력 조직이 속속 드러나면서 교육 현장을 책임진 당국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서울시의 초·중등 교육을 책임진 민선 교육감은 황폐화한 교육 현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른바 ‘촌지 기록부’를 작성했던 초등학교 여교사에 대해 해임 조처가 결정된 지난 7월18일,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65)을 만났다.

현재 교육감으로서 느끼는 학교 폭력의 체감 지수는 어느 정도인가?

올해 6월까지 금품 갈취 및 폭력 피해 사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과 달리 폭력 양상이 더욱 난폭해지고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진다는 데 있다. 학교 밖의 조직 폭력과 연계되어 있는 전과자들을 무조건 복교시켜 놓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제적생 복교 문제는 교육 당국 스스로 ‘전원 허용’과 ‘선별 복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심각해진 것 아닌가?

정부 내 다른 부처와의 이견 속에서 교육부가 중심을 잡지 못한 것 같다. 다른 부처 입장에서야 전원 복교시켜 놓고 학교더러 알아서 책임지라고 하면 편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앞으로 제적생 복교는 어떤 원칙으로 실시할 방침인가?

심의위원회를 거쳐 선별적으로 복교를 허용하되, 제적된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복교시킬 방침이다. 복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은 직업 학교 등으로 보내 별도 교육을 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겠다.

청소년 폭력과 탈선이 심각해진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원인은 학교에 있지 않고 가정과 사회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포르노 비디오에 출연한 여학생도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단란주점 등을 전전하지 않았나. 언론의 부풀리기식 보도도 문제이다. 심지어 기자가 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폭력 장면을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학부모들은 ‘학교만이라도’ 안심하고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감으로서 현장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물론 학교 폭력이 심각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학교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폭력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밖의 조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 행정력만으로 다스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흥업소 주인들이 청소년 선도위원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차원의 선도만으로는 힘들다.

검찰과 경찰은 교내 폭력 조직에 대해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적용할 의사를 나타내는 등 일벌백계식으로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통령 지시 이후 검찰과 경찰은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한건주의식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교육이 실종될 수밖에 없다. 학교 폭력은 모조리 잡아 넣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에서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펼 수 있는 정책적 방안은 어떤 것이 있나?

학교 폭력은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남녀 혼성반과 청소년상담센터이다. 남녀 혼성반은 일선 학교의 보수적인 교장들이 모두 반대해 애를 먹었으나 현재는 정착 단계이다. 상담센터에는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수렴하기 어려웠던 성 관련 상담이 전체 상담 사례의 15%를 차지하는 등 학생들로부터 적지 않은 호응을 받고 있다.

촌지 기록부 사건이 터지면서 교사 촌지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교사 촌지 문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준 것이다. 최근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 오히려 강북 지역 발령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강남 지역 학교에서 거액 촌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학부모 단체에 들어온 제보를 보면 ‘기본이 50만원’이니 ‘아예 통장으로 넣어 달라’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인식과는 상당한 편차가 있는 것 같다.

교육감 직을 걸고 촌지 근절을 선언한 만큼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학부모 상담실 등에 들어온 천 건이 넘는 제보 사항 중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촌지 수수 사례가 앞으로도 적발되면 언론에 공개하는 등 엄정하게 처리해 나가겠다.

과학고·외국어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특수 목적고 학생들에 대한 상대평가식 내신 적용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이 지난 7월16일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다. 그동안 학부모들의 주장에 비춰 보면 또다시 집단 전학원 제출 등의 사태가 예상되는데.

특수 목적고는 말 그대로 외국어나 과학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설치된 것인 만큼 입시를 목적으로 이들에게 특혜를 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빨리 내려 준 것을 환영한다. 학부모들의 전학원 제출은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교육 당국으로서는 더이상 취할 조처가 없다.

특수 목적고 내신 문제는 고교 평준화 정책에 대한 교육 당국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생긴 것 아닌가?

평준화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니까 교육부가 편법을 동원해 외국어고를 만드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다. 그러나 특수 목적고는 어디까지나 설치 목적에 맞는 범위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특수 목적고에 다니면 무조건 엘리트라고 여기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