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미국 대통령), 전두환(보안사령관), 노태우(수경사령관), 정호용(특전사령관), 박준병(20사단장)…. 이 지역 미술공동체 화가들이 설치해 놓은, 이곳에서 15년째 수배중인 그 날의 ‘학살 원흉’들이다.
그 초상 중에서 유일한 현직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학살자들을 처단하지 않고 역사에 미룬 혐의이다. 그러나 그 얼굴은 지금 없다. 그 얼굴이 있던 자리에는 대신 ‘광주경찰청 정보과 형사들이 몰래 떼어갔음’이라는 도난 신고서가 붙어 있다.
그 도난 당한 그림의 주인공이 이 묘역의 주검들이 깜짝 놀랄 일을 저질렀다. 11월24일 5·18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5·18 문제에 대해 ‘역사에 맡기자’(93년 5월),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존중하자’(95년 7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자’(95년 10월)고 했던 김대통령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충격의 뒤에 변명이 이어진다.
왜 이제서야 특별법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당시 김대통령이 야당 총재였기 때문에 정보가 없어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의 유일한 변명은 ‘착각’이다. 결론만 잘못된 것이므로 ‘실패한 쿠데타’로 결론을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하루 전에 헌법재판소가 내부적으로 5·18 재수사 결정을 내린 점이다. 야당의 주장은, 그같은 정보를 입수한 김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을 ‘가로채서’ 특별법 제정 지시라는 깜짝쇼를 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두 ‘도난 신고’가 괜한 의심인지는 김대통령 하기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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