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요했나 중국이 두려웠나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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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한·일 정상회담/일본 총리, ‘북한 정책 3원칙’ 제시…한·중 연대에 당혹, 한·일 공조 강조
지난 18일 오사카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무라야마 일본 총리는 일본의 ‘북한 정책 3원칙’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에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그는,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기존 한·일 관계를 손상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둘째로 북·일 간의 관계 정상화는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마지막으로 북한과 수교하기 전에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지난번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이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와 협의 없는 쌀 지원은 더 이상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무라야마 총리의 ‘약속’은 다소 의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의 공조 체제를 강조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쌀 지원과 수교 협상을 진행시킴으로써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발 빠르게 추진해 왔다.

무라야마 ‘약속’ 공수표 될 수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무라야마 총리에게 ‘북한은 한·일 양국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한국을 따돌리고 있는데, 일본은 한국 정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북 쌀 지원 협상과 함께 수교 협상을 진행해왔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 일본이 북한의 이간책에 말려듦으로써 결과적으로 남북 통일을 방해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에 대해 무라야마 총리는 한·일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일 관계 개선은 남북관계 개선 속도에 맞춰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일 공조체제는 지난 6월 대북 쌀 지원과 수교 협상이 진행되면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일본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통해 수교 협상을 재개하려는 노력을 강화해 왔다. 이 때문에 한·일 공조에 이상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제기되었지만, 그 때마다 양국 정부는 이를 부인해 왔다. 그러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의 골이 확인되자, 양국은 서둘러 북한 문제에 관한 ‘균열’을 봉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연립 여당의 대표로서 지도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무라야마 총리의 약속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북·일 관계 개선은 일본의 국익에 좌우될 일이지 무라야마 총리 개인의 약속에 의해 구속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 등 3개 정당으로 이루어진 연립 여당 내에서 무라야마 총리가 속한 사회당의 입지도 그리 넓지 않다. 따라서 대북관계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자민당이 무라야마의 노선에 반기를 들 경우 그의 약속은 공수표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1월, 한·미·일 고위 회담 예정

한편 17일 한·미·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3국 외무장관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3국간 공조체제를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고, 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고위 회담을 내년 1월에 열기로 합의했다.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이번 외무장관 회담에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기에 앞서 경제 협력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선 수교, 후 경협’이라는 정부 방침과 어긋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일본측 다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일본이 기존 북한 정책에서 한 발짝 후퇴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에토 총무처 장관의 발언으로 한·중 협력관계가 구축 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11월14일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이 김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과거사 망언을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 일본 정부는 내심 크게 당혹해 했다는 것이다.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연대’에 크게 자극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일본의 북한 정책 3원칙은 에토 전 총무처 장관 망언 파문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놓은 임기응변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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