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경련 회장, 정세영 유력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9.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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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층이 미는 손길승 SK그룹 회장, 본인 고사해 가능성 적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전격 사임했다. 전경련 사상 회장이 중도 하차한 것은 처음. 임기를 16개월이나 남기고 이루어진 그의 퇴진은 본인 뜻에 따른 것으로 확인된다. 대우나 전경련은 현정권으로부터 직접적인 퇴진 압력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회장이 퇴진 결단을 더 미룰 수 없으리만큼 여러 정황이 그를 옥죄었던 것은 틀림없다. 7월19일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 뒤로 시민단체 등에서는 실패한 경영인은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8월26일 12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방침 결정은 그의 등을 세차게 떠밀었다. 사실상 그룹 회장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경영권을 상실한 것이다. 김회장도 ‘사퇴의 변’에서 이 시점부터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11월6일 워크아웃 계획이 확정된 뒤 채권단이 그를 관리인 혹은 새로운 경영자로 불러 주어야만 대우 경영자로서 입지를 잃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에서 김회장은 ‘추하게’ 전경련 회장 자리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지는 치욕스런 상황을 막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회장 직은 그룹 회장 직을 잃으면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

다음 전경련 회장은 누가 될까. 일단 10월14일 정례 회의에서 인선 방법 등이 논의될 예정이지만, 공개 회의인 데다가 5대 그룹 총수가 불참할 예정이어서 논의 수준에 한계가 있다. 결국 5대 그룹 총수와 부회장단, 원로 그룹, 30대 그룹 상임 이사단 등이 다각도로 물밑에서 접촉해 한 사람을 옹립해 만장일치로 추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센 그룹은 5대 그룹 총수. 전경련에서의 발언권은 회비 기여도, 다시 말해 재력에서 나온다. 1인1표가 아닌 ‘1원 1표’인 셈. 전경련 유한수 전무는 “후임자 선정 작업을 ‘광속’으로 진행해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라고 말한다. 전경련은 11월 초순 다음 회장을 뽑는 임시 회의를 열 계획이다.

문제는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 강도 높은 재벌 개혁에 인적 청산론까지 불거지는 험악한 판국이어서 정부 쪽에 맞서 재계 이익을 대변할 자리에 선뜻 나설 총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임자를 낙점해 ‘강청’할 수밖에 없다.

전경련에는 5대 그룹 오너가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묵계가 있다. 대기업과 재벌 총수 모임이라는 전경련을 대표하려면 오너이며 기업 규모가 커야 제격이라는 인식이다. 정몽구(현대그룹)·이건희(삼성그룹)·구본무(LG그룹) 회장이 우선 물망에 오른다. 그러나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완강히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너 진영에서 대안이 없다면 전문 경영인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물망에 오르는 인사는 손길승 SK그룹 회장. 손회장은 전문 경영인 체제를 지향한다는 현정부의 재벌 개혁 추세에도 부합해 집권층 일부가 ‘세게’ 밀고 있다는 후문. 그러나 손회장 낙점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손회장 자신이 강하게 고사하는 데다가, 최태원 SK(주)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옹립하겠다는 후계 구도에 차질을 빚을까 봐 SK그룹이 반대할 공산이 크다.

이런 정세에서 절묘한 카드로 떠오르고 있는 인사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회장은 오너라고 하기도 어렵고 오너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묘한 위치에 있다. 바로 이 점이 오히려 전경련이나 현정부가 모두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정세영 카드를 가장 유력하게 본다.

전경련 “후보 2~3명으로 압축”

김상하 상공회의소 회장도 물망에 오른다. 그 자신이 중견 기업을 경영하는 데다가 명망가여서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웅배·김준성(이수화학 회장) 전 부총리도 거론된다. 지금과 같이 시절이 하수상할 때는 김우중 전 회장의 잔여 임기 동안 관료 출신이 바람막이 노릇을 효과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기대이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후보가 2∼3명 선으로 압축되었다. 이들이 창와대의 기피 인물이 아닌지도 탐문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왜 사람들이 민간 단체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느냐고 일침을 놓았다.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말로, 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더 입에 맞는 인사를 앉히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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