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문제, 구관이 명관”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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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원측 “국가안전보장회의로는 남북 관계 현안 못푼다” 주장
그를 처음 만난 때는 6공화국 말기였다. 남북 관계가 무르익어 통일원의 역할이 어느 부처보다 강조되었던 그 무렵 그는 통일원의 핵심 중간 간부였다. 그런 만큼 그에게서는 열정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5년 동안에 그의 사명감은 좌절감으로, 열정은 냉소로 바뀌었다. 실무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고, 밀실에서 결정된 한탕주의 정책들이 남북 관계를 벼랑으로 몰고갈 때마다 그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가온 김대중 정부. 요즘 그는 착잡하다. 이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함께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기대감은 ‘통일 전문가’인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그가 대통령 후보 시절 내놓았던 공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해 12월7일 김대중 후보는 2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통일 문제와 관련해 “법을 법대로 이행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하루속히 통일원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통일원이 주도하고 안기부·외무부는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98년 1월호 <신동아>와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법에 명시된 대로 통일 문제에서는 통일원이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게 할 방침’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공약과 달리 흘러갈지도 모른다. 아직 시안에 불과하지만, 최근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정개위)가 작성한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구조 조정안이 그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난 1월16일 공청회까지 거쳐 확정된 1차 시안에 따르면, 어디에서도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공약한 ‘통일원 기능 정상화’라는 문맥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통일원은 통일부로, 통일 부총리는 장관으로 위상이 격하했을 뿐이다.

위상 격하만을 안타까워한다면 그것은 부처 이기주의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경제난 속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통일 문제라는 시대적 과제가 자칫하면 또다시 실종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정개위 1차 시안은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총괄 조정 기능을 대통령 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국가안보회의)가 다루도록 하고 있다. 국가안보회의는 헌법에 규정된 헌법 기관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김일성 사망과 잠수함 사건 때 외에는 한 번도 회의가 열린 적이 없을 만큼 유명무실하다. 김영삼 정부는 이같은 국가안보회의보다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주재하는 통일외교안보조정회의(안보조정회의)라는 임의 기구를 애용해 왔는데, 이번 개편 시안에서는 임의 기구인 안보조정회의를 헌법 기관인 국가안보회의로 교체해 현실성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 같은 중대 현안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김영삼 정부 내내 겪었던 통일 정책의 실종이라는 뼈아픈 과거가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은 정개위의 국가안보회의 발상이 우리와는 상황이 전혀 다른 미국식 제도를 채용하고 있다는 데서도 입증된다.

“안보와 통일은 별개”

국가안보회의 구상은 사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의 NSC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한 백악관 직속 기관으로, 평상시에는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주재하게 되어 있다.

정개위가 제시한 국가안보회의 역시 대통령이 의장이고, 평상시에는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 주재한다는 점에서 발상이 똑같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제도만 빌려왔을 뿐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 간과된 것이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북한과 같은 특수한 상대가 없다. 적이면서도 공존해야 하고 나아가 통일까지 해야 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전세계를 상대로 자국의 군사 안보 이익을 관철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북한은 군사 안보 대상임과 동시에 관계 개선 및 통일의 대상이다. 안보와 통일은 큰 테두리에서는 같은 문제일지 모르나, 각론에 들어가면 접근 방식이 매우 다른 분야이다.

이 점은 왜 지난 6공화국 말기에 통일 분야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통일원의 위상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던가를 돌이켜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통일원이 국토통일원에서 통일원으로, 그리고 통일원장관이 부총리로 승격함과 동시에 그 산하에 통일관계장관회의라는 법적 기구까지 갖추고, 통일 및 남북 관계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기능을 부여받은 것이 바로 90년 12월 정부 조직 개편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남북 대화가 활성화하면서 이 분야 업무가 폭증했었다. 민간의 참여가 활성화하고, 또 정부 부처 별로도 대북 사업이 기획되는 등 시대 흐름이 급변하면서 안보 위주로 짜인 정부 진용을 개편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통일원이 주어진 위상만큼 제 역할을 했느냐는 반론도 있고, 김영삼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악화해왔기 때문에 그 필요성이 당장 피부에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과연 그럴 것인가. 경제 위기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평소 철학과 남북한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남북 관계 역시 개선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만큼 이 분야의 행정 업무도 늘어나게 된다. 차기 대통령 역시 이런 사정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통일원 위상 강화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런 기능을 하면 되지 않겠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지만, 국가 안보라는 중대 사안을 결정해야 할 국가안보회의에서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한 복잡다단한 현안을 챙긴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통치권 자체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외교 책략에 능란한 북한을 완충 장치 없이 대통령이 직접 상대할 경우 만에 하나 통치권 훼손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국가안보회의에서 통일 문제까지 관장하려면 미국의 NSC처럼 그 산하에 방대한 사무국 조직을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통일원 업무와 중복될 수밖에 없는 사무국을 ‘작은 청와대’안에 중복 설치하게 되는 문제가 따른다.

사실 이번 개편안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과제에 집착해 통일 문제가 가지는 복잡성과 전문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이번 개편 시안 작성을 주도한 정개위측 고위 인사 역시 이런 문제점을 인정했다. “솔직히 말해 통일 분야 업무의 특수성이 깊이 다루어지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통일원은 통일원대로 절충안을 작성했다. 외교·안보 문제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시안에 있는 대로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회의가 다루되, 통일 및 남북 관계 업무는 현행법대로 통일 부총리가 통일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총괄 조정하도록 해 달라는 요지이다.

부총리직 유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통일원측은 대화 상대인 북한측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 부총리급 인사들을 다수 포진시키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시대 흐름에서‘작은 목소리’일 수밖에 없는 통일원의 이같은 입장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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