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 반환운동 점화
  • 정희상 기자(hschung@e-sisa.co.kr)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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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반환 시민운동 점화… 1990년 체결된 기지 이전 합의각서는 ‘낮잠’
환경운동 단체인 녹색연합이 용산에 주둔한 미8군이 독성 물질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 사실을 폭로한 뒤 미군에 대한 시민의 반감이 번지고 있다. 이는 단지 독극물을 한강에 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한미군 당국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인 점이 국민 감정을 더 자극한 것이다.

미군은 지난 2월 포름알데히드가 무단 방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동안 쉬쉬했다. 내부 제보를 받아 녹색연합이 폭로한 뒤에야 해명에 나선 미군측은 버린 독극물이 물에 희석되었으므로 환경에 별 영향이 없다고 강변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포름알데히드 병에 ‘어떤 방법으로도 독성를 제거할 수 없다’는 문구를 써넣은 제작사는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다.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 파괴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용산기지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미군이 독극물조차도 소홀하게 다루어 왔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으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동서의 너비가 한강대교·동작대교·반포대교 등 세 교량에 걸치고, 남북의 길이가 국제상사 빌딩 앞에서 숙대 입구에 이르는 1백5만여평의 땅을 용산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다. 과천 서울대공원의 3배, 서울 고궁을 다 합친 면적보다 넓고, 여의도보다도 훨씬 큰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이 확대되면서 수도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 땅은 외세가 한반도에 진주할 때마다 군사 기지가 설치된 치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는 민족의 수난사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수도 서울을 기형 도시로 만들고 시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1979년 당시 예산으로 5백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들여 건설한 동작대교는 미군 골프장 때문에 다리 끝부분을 샛길과 연결해야 했다. 지하철 4호선도 불필요하게 구부러졌으며, 서울의 교통 요지이면서도 기지 주변에는 3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한다. 또 강남북을 오가는 서울 시민이 남산 터널 혼잡 통행료를 부담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군 기지가 차량의 도심 진입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군측이 용산기지에서 군사적 목적과 상관 없이 벌여온 여러 가지 행위도 시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왔다. 군용 시설 안에 민간 시설인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부지 9만여평)를 짓는가 하면, 부대 근처 주민에게는 3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기네는 용산구청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6층짜리 호텔을 지어 운영했다. 최근 들어서는 용산기지 안에 택시 주차장을 마련해 미군 기지를 운행하는 한국 택시를 상대로 수익사업을 벌이는 바람에 관할 용산구청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미 10여년 전부터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시민운동 단체들은 용산기지를 이전하기 위한 해법을 찾느라 고민해 왔다. 서울이 확장되면서 수도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게 된 무려 1백5만여평의 외국군 기지를 민족 자존은 물론 서울의 발전을 위해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따라 1988년에 들어선 노태우 정부는 용산 미군기지와 세종로에 있는 미국대사관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미군측과 협상에 들어갔다. 그 결과 1989년에는 ‘용산기지 내의 모든 군사 시설을 1996년까지 이전하겠다’는 미국측의 동의를 받았다. 이듬해 6월25일 이상훈 국방부장관과 루이스 메네트리 한미연합사 사령관 사이에는 ‘(용산)군사시설 이전에 관한 합의각서’(합의각서)가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용산기지 이전 업무를 전담할 `‘용산 사업단’을 발족했고, 서울시는 용산기지 부지에 조성할 민족 공원의 밑그림을 그려 왔다. 당시 민족 공원 입안에 참여한 서울시 강창구 도시계획과장(현 서울시 건설안전본부 시설국장)은 “북단이 잘린 동작대교와 서울역을 잇는 6차선 도로를 만들고 뉴욕 센트럴 파크와 맞먹는 세계 수준의 민족 공원을 만든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군 버티기에 정부는 속수무책

처음 몇년 간은 용산기지 이전 계획이 착실히 추진되었다. 실무 협상을 벌인 국방부는 용산기지를 미 7공군 사령부가 있는 오산이나 평택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해 미군측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1991년 평택군 서탄면과 고덕면 일대 부지 26만8천평 구입 계획을 고시했다. 이어 합의각서를 이행하는 첫 단계로 1991년에 용산기지 한귀퉁이 9만평을 돌려받은 서울시는 여기에 용산 가족공원을 조성했다. 당초 12만평을 돌려주기로 했던 미군이 헬기장과 오수 처리장이 있는 3만평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버텨 가족공원은 다소 축소되었다. 서울시는 당시 미군으로부터 돌려받을 용산기지 전체를 대상으로 거대한 공원 조성 밑그림까지 그려두었다(12쪽 표 참조).

그러나 이후 용산기지 이전 작업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군측이 당초 합의한 기지 이전 비용 액수 17억 달러를 95억 달러로 늘리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전 비용을 한국 정부가 댄다는 불평등한 합의 때문에 정부는 재원 마련이라는 난관에 부닥쳤다. 이와 함께 이전 후보지인 평택 지역 주민의 반대운동도 거셌다. 이런 상황에서 1993년에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하자 안보 상황이 불확실해졌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용산기지 이전 계획을 백지화했다. 1993년 정부는 평택의 26만여평 부지 매입 계획도 철회했다. 그 뒤로 현재까지 정부는 기지 이전을 위한 이렇다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맨 처음 물꼬를 튼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논의를 거두어들이자 시민단체들이 합의서 이행 일자를 넘긴 1996년부터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전국연합이 주축이 되어 재야 단체들이 용산기지 반환 운동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보태 올해 들어서는 용산기지를 시민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문화 환경운동도 가세했다. ‘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월부터 ‘살고 싶은 서울 만들기’라는 기치를 걸고 용산기지 반환과 서울 센트럴 파크 조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를 위한 천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www.cncr.or.kr). 곧 용산기지 공원화를 위한 국민운동 본부를 발족하기로 한 이들 단체는 미국 순회 캠페인도 벌일 예정이다. 뉴욕 센트럴 파크와 비슷한 서울의 중심에 미국 군대를 두어서는 안된다며 미국내 시민운동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문화연대 조명래씨(단국대 교수)는 이렇게 밝혔다. “용산기지를 돌려받아 공원으로 조성하면 서울은, 그린벨트로 둘러싸인 환상형 녹지,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강축 그리고 남북으로는 북한산 국립공원-비원-창경궁-종묘-남산-용산-국립묘지-관악산을 연결하는 축을 형성해 명실상부한 녹색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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