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재판, 피고는 ‘국보법’ 이었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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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만신창이 돼…검찰, 재판 내내 수세 몰려
지난 7월22일 정오 여의도 국회 앞, 화씨 91도(섭씨 33도). 찜통 더위를 실감케 했다. 아스팔트가 부글부글 끓었고, 그냥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열두 살 준홍이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준홍이는 마냥 싱글벙글이다. “힘 안 들어요.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데요.”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 도보순례단에 준홍이가 앞장을 섰다. 0.75평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다. 준홍이 아빠는 통일연대 사무처장 민경우씨(40). 지난해 12월1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민씨는 징역 4년·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민씨에게 씌워진 핵심 혐의는 국가 기밀 유출, 바로 ‘간첩’ 혐의다.

그런데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민씨가 유출한 국가 기밀은 어이없게도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 수준이었다. 그것도 민씨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에서 활동한 3년 전 일을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이다. 준홍이에게 아빠는 제2의 송두율인 셈이다. 그래서 7월20일 준홍이는 설레였다. 바로 아빠와 비슷한 처지인 송두율 교수가 풀려났기 때문이다. 1350km 대장정에 나선 준홍이는 “아빠도 8월15일 특사 때 풀려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속된 지 10개월 만에 송두율 교수가 석방되었다. 송교수가 석방됨으로써 국가보안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존폐를 두고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가세했다(상자 기사 참조). 오는 9월 정기국회 때 국보법 존폐를 둘러싼 대회전이 시작될 조짐이다. 준홍이가 앞장선 대장정을 시작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나 ‘민주화 실천 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이 팔을 걷어붙였다. 바로 송두율 교수 판결이 국보법 폐지 운동의 도화선이었다.

7월20일 서울고법 형사 6부(김용균 부장판사)는 송두율 교수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992년 5월 이후 다섯 차례 방북과 황장엽씨에 대한 사기 소송 건만을 문제 삼았다.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정치국 후보위원 건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북한 권력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를 확신한다던 국정원이나 검찰은 머쓱해졌다. 검찰은 다음날 곧바로 상고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검찰의 당혹감은 클 수밖에 없다. 공안부 검사들은 더욱 그렇다. 공안부 출신 한 변호사가 “검찰의 완패다. 공안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만 남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공판 과정을 들여다보면, 송교수 재판은 국보법 재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일 서울지법 311호에서 열린 첫 공판부터 ‘이상 조짐’이 엿보였다. 피고와 원고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송교수는 여론 재판으로 광복 이후 최대 거물 간첩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여유 있어 보였다. 재판이 시작되자 수세로 몰린 쪽은 검찰이었고, 국보법이 피고가 되었다.

지난해 12월23일 3차 공판은 피고와 원고가 뒤바뀌는 결정판이었다. 검찰은 정석대로 국보법에 따라 충실하게 질문을 던졌다. ‘국가보안법상 북한은 북한 공산 집단이다. 우리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 단체이다. 그런데 왜 피고는 남한 사회는 비판하고 북한 민주화에 대해서 입을 닫느냐.’ 송교수는 그같은 흑백 논리 질문에 더 답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검사 3명이 2시간 동안 돌아가며 답변 없이 질문을 읽어 내려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검찰의 질문 대부분은 송교수의 저서 가운데 공안 시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만을 쏙 뽑아내 인용한 것이었다. 2시간 뒤 힘이 빠진 쪽은 검찰이었다.

검찰 심문이 끝나자, 변호인단은 ‘외눈박이’ 검찰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검찰은 6·15 공동선언도 안 보았느냐. 그런 낡은 대북관을 아직도 가지고 있느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변호인단은 나아가 북한 당국에 송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맞는지 사실 확인을 하자는 깜짝 제안을 했다. 북한 자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검찰로서는 당혹했다. 재판부는 일단 받아들였다.
공판 때마다 송두율 교수는 피고인석에 앉았다. 하지만 더 이상 피고가 아니었다. 송교수는 특유의 화법으로 검찰의 논리를 파고들었다. 검찰과 변호인단 공방 역시 국보법 문제로 매번 귀결되었다. 변호인단은 국보법의 문제점을 집중해 파고들었고, 검찰은 국보법 사수 논리를 폈다.
지난 3월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이대경 부장판사)는 송두율 교수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승리로 1심 재판이 끝났다.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했다. 변호인단은 4월7일 국보법을 정식으로 문제 삼았다. 변호인단은 1심 판결의 근거였던 국보법 3조 1항(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에 처한다)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간부’나 ‘임무’ 등 법률상 구성 요건이 막연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막판 뒤집기를 시도했다. 북한 당국의 확인을 받아낸 것이다. 공식 통로가 막히자, 우회로를 찾았다. 독일 변호사를 통해, 독일 주재 북한대사관에 사실 관계를 요구한 것이다. 북한대사관측의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구두 답변을 할 수 있지만, 문서로는 답변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다 7월8일 2심 선고를 앞두고 북한대사관이 회신을 보내왔다. ‘조선노동당은 외국인(송두율)에게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을 줄 수도 없고, 준 적도 없다.’ 변호인단은 원본을 구해 부랴부랴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반국가단체 확인서가 재판부에 제출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7월20일 서울구치소를 나선 송두율 교수는 “역사가 나의 무죄와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른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그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는 파란 인주가 묻어 있었다. 출감 절차를 밟으며 찍은 파란 인주는, 마치 마녀 재판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듯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송두율 교수 석방 이후 7월28일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된 사람은 11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검찰 기소 전 상태여서 사실상 구속 수감된 인원은 10명이다. 이 가운데 8명이 한국대학총학생연합(한총련) 학생들이다. 이례적으로 적은 수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다. 보통 9월 이후 국보법 위반 사범이 수직 상승한다. 검찰이 9월이 지나면 그 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한총련 학생 50명 이상에게 수배 조처를 내리기 때문이다.
민가협 한지연 간사는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검찰·경찰·국정원 등 공안 기관은 국보법 위반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전남대생 윤영일씨 경우처럼 집시법으로 붙잡히더라도 국보법 사범이 된다. 한총련 간부였던 윤씨는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지난 4월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되었을 때 윤씨는 안심했다. 집시법 위반에 대해서만 재판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국보법상 이적표현물 탐독 소지죄를 적용했다. 한총련 정책 자료집만 읽어도 국보법에 접촉된다.
7월22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 보라색 손수건을 둘러쓴 어머니들이 목요집회를 열었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이 날도 국보법 폐지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집회 도중 탑골공원의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국보법이 사라지면 나라 망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민가협 회원들과 몸싸움 일보 직전까지 갔다.
1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만큼 국보법 존폐 논란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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