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초당 대처 외치지만…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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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놓고 ‘시각차’…청와대, 마땅한 대응책 없어 곤혹
하한 정국에서도 건건이 마찰을 빚어온 정치권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여야 간에 여전히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일단 참여정부가 견지해온 ‘조용한 외교’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데에 공감한다. 중국에 우호적이던 분위기도 ‘패권주의 경계’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응책을 놓고는 강경론과 신중론이 엇갈린다. 강경론의 대표주자는 문희상·김원웅 의원이다. 참여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의원은 “중국 사회과학원이 고구려사가 포함된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처음 파악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당시는 추진 주체가 학술단체여서 우리도 학계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 예비비까지 끌어당겨 ‘고구려 연구재단’을 출범시켰는데, 지난 7월 만주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로는 중국 정부가 주체가 된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제는 우리도 학술적 대응만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외교 다각화 추진하던 정부 ‘진퇴양난’

김원웅 의원은 한 발짝 더 나아가 1909년 체결된 청·일간 간도협약을 아예 원천무효화하는 결의안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반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역사 왜곡을 주중대사 소환 같은 정치·외교 이슈로 부각하면 할수록 중국의 의도에 말려들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당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학술 문제가 정치 문제로 비화하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해결이 쉽지 않다”라고 했고, 대야 협상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이종걸 원내 수석부대표도 “국회 차원의 대책기구를 만드는 게 국민 정서만 자극하고 실효성은 없지나 않을지 조심스럽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처럼 강온 기류가 엇갈리는 여당과 달리 야권에서는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나 정부의 입장 대신 국민 정서만 따라 잡으면 되는 데다, 특히 이번 국면을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우회적으로 공격하는 호재로 활용할 생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8월9일 독자적으로 고구려사왜곡대책특위를 구성한 데 이어, 박 진·박찬숙 의원 등이 주한 중국대사관을 항의 방문했고, 박근혜 대표도 조만간 리빈 중국대사를 만날 계획이다. 그 사이사이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모호하니까 밖에서도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훼손하려는 것’이라며 정치 공세를 벌이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정치권의 강경 기류가 적잖이 부담스런 기색이다. 국민 여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참여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라인은 그동안 중국에 우호적인 외교 노선을 견지해왔다. 대미 의존적인 외교를 지양하고 외교 라인을 다각화하자는 취지였다. 지난 1월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외교통상부장관으로 승진했을 때, 후임으로 중국 전문가를 물색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과 이런저런 마찰이 빚어지고 급기야 역사 왜곡 문제까지 불거지자 그간의 외교 노선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그렇다고 그대로 밀고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게다가 중국과는 북핵 6자 회담, 경제 교역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걸려 있어 청와대가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래저래 외교 노선을 둘러싼 참여정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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