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입학 전문 학원 '문전성시'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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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해외에서 '입시 유학' 오기도…부정 입학은 '공공연한 비밀'

사진설명 특례입학 "내손안에": 1993년 한국켄트외국인학교를 설립해 운영해온 조건희 이사(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정 입학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서울대 특차 모집에 지원했다가떨어졌다." 삼수생인 김은미씨(가명·21)는 지난12월28일 고려대 경영대 정시모집에입학 원서를냈다. '마지막 기회로 생각한다'는 김씨는떨리는 마음 한편으로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누구는 6년 동안 공부해도 불합격인데, 누구는 서류조작만으로 합격하느냐."

김씨를 분노케 만든 재외국민 부정입학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12월28일까지 검찰의 수사선에 오른 부정 입학생은 47명이다.지난 12월17일 사건이 불거진 뒤 검찰 수사 열흘 만에 부정 입학생이 4명에서 50명 가까이 늘어났다. 부정 입학자가 늘기 시작한 것은학부모의 '물귀신' 진술 탓이다.부정 입학의 큰손 한국켄트외국인학교 조건희 이사(52)는자물쇠를 채운 듯 배후의 브로커 조직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부정 입학 관련 학부모들이다른 부정 입학자를 술술불기 시작했다.대학마다 부랴부랴 출입국 서류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부정 입학자가 순식간에늘었다. 검찰의수사가 순풍을 타면서 고려대·단국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등 사립대학뿐 아니라 국립 서울대에까지 부정입학 파문이 번졌다.

문제의 재외국민 특례 입학제도는 1976년 외교관 자녀를 위해 처음 실시되었다.이후 공무원과 일반 회사원 자녀에게 특례 입학 문이 넓어지면서 입학 유형도 세분화했다. 1996년8월 교육법이 개정되어 2년 이상외국에서 공부한 학생은 대학 자체 입학시험3∼4 과목을 통과하면 되었다. 이들은 전체 입학 정원의 2% 내, 학과별 입학 정원의 10%내에서 정원외로 뽑혔다.12년 이상 해외에서 공부한 수험생은 정원에 관계없이 무시험 전형으로선발되었다.이들은 대학에 제출한 초중고 전학년 성적증명서·졸업증명서·출입국증명서·자기소개서·공부계획서·추천서 등으로 합격이판가름 났다. 서류 전형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검은손이 개입할 여지가 많았다.

무조건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학부모에게 무시험 특별 전형은 더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특례입학 전문 학원 관계자는"무시험 특별전형을 둘러싸고 학원가에는 부정 입학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부정 입학은공공연한 비밀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외국 학교 성적증명서나 졸업장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학교 졸업장 "돈으로 쉽게 위조"

검찰은 외국인학교와 특례입학전문 학원 주변의브로커 조직을 추적하고 있다. 이번 수사를 통해 밝혀진 대다수부정 입학자가 한국켄트외국인학교 출신이다. 그러나 4∼5명은다른 외국인 학교 출신이어서검찰은 수사를 전체 외국인 학교로 확대하고 있다.

현재 전체 외국인학교는 60여개다.외국인 학교 수업료는 영어 사용 학교가 평균 5백68만원이다. 천만원이넘는 학교도세 군데나 된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인가를 받은 23개교 전체 학생수는 5천4백54명, 이 중 내국인이 4백65명이다. 한국켄트외국인학교는 2000년 9월 현재 전체 학생 2백13명 가운데 93명이 내국인이다.

부정 입학과 관련해 대학도비난을 면키 어려렵다. 결과적으로 대학은 손해볼 것 없는등록금 장사를 한 셈이다.정원외 인원을 자율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각대학은 학생을 많이 뽑을수록 등록금을 벌어들였다. 각 대학은 해마다 특별 전형 학생수를 늘렸다. 검찰은대학 입학 관계자에게까지 의혹의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재외국민특별전형은 편법 입학을 부추기고 있다. 해외 거주 2년을 채우기만 하면 재외국민 특별전형 자격을 주기 때문에, 대학에 쉽게가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2년간 해외에 거주하다가 국어 영어 수학 등 3∼4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


특례입학 학원가 주변에 하숙집도 생겨

따라서 서울 강남 지역에는 특례입학 수험생 대상 전문 학원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특례입학 전문 학원은 과목당20만원으로 한달 수강료만 60만∼80만 원에 달한다. 특례입학 입시생 사이에는 이미 소문이 자자해, 방학이면 해외에서 거꾸로 입시 유학을 온다. 학원가주변에는 이들을 상대로 한 하숙집도 생겨났다. ㅅ특례입학 학원 관계자는 "지방과 해외에서 방학을 이용해 수강하려는 학생이 많다"라고 말했다.

특례입학이 편법으로 이용되면서1997년 서울대에 지원한 김 아무개군 등 2명은 특례입학으로 비인기 학과에 합격하고, 정시 모집에다시 응시해 인기학과에 합격했다. 이들은 인기학과에 등록했다. 같은 해 이 아무개군 등6명은 특별전형에서 탈락한 뒤 정시모집에 응해 의예·치의예학과에 합격했다. 이들은 다른수험생보다 한번 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교육부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의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2학년도 입시부터해외에서 12년간 수학한 학생도 시험을 통해 선발하도록 각 대학에 권고했다.그러나 이 정도 처방으로 입시 부정이뿌리 뽑히리라고믿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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