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벌 언론의 '비밀 금고' 깨라
  • 김종배(<미디어 오늘> 편집장) ()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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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세무조사, 소유 지분 이동·내부 거래·리베이트 등 밝혀야

사진설명 "황실의 비밀 밝혀라" : 지난해 12월8일 국세청 앞에서 황제 경영을 하는 각 신문사를 세무 조사 하라며 시위하는 언론단체 회원들.

국세청이 언론사 세무 조사 방침을 발표하기 며칠 전 한 유력지는 대책팀을 꾸렸다. 사주의 지시에 따라 꾸려진 이 대책팀의 팀장을 경제부장이 맡았다. 정치부·사회부와 공조 체제를 갖추기는 했지만 팀원의 주축은 국세청·금감원·공정거래위를 출입하는 경제부 기자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 개혁을 강도 높게 언급한 후 '언론 개혁=언론발전위 구성'이라는 등식이 언론계에 운위되고 있을 때 이 유력지는 '다른 냄새'를 맡은 것이다.

이 유력지의 사례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언론사가 세무 조사에 대해 대단히 예민해 한다는 점, 다시 말해 세무 조사를 상당히 경계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족벌 언론사, 총력 방어 태세

왜일까? 왜 언론사, 특히 족벌 언론은 세무 조사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기업치고 세무 조사 겁내지 않는 기업 없다'는 세간의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무 조사를 앞둔 언론사의 최대 취약점은 '기고만장'일 것이다." 이미 권력 집단이 되어 버린 언론, 그래서 그들은 이 정부가 세무 조사를 강행하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란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총력 방어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14개 언론사를 세무 조사한 1994년의 경우를 보면 이런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당시 국세청은 애초 잡은 일정보다 10일이나 늦추어 세무 조사를 마무리하면서 그 이유로 언론사의 회계 장부 미비를 들었다. 언론사가 장기간 세무 조사를 받지 않아 경리 장부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이 늦어졌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는 또 한 측면에서는 세무 조사가 매우 흥미진진하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회계 장부 뒤지는 데는 '도사급'인 국세청 직원들이 현미경을 제대로 들이댄다면 언론사의 경영은 금세 '어항 속의 붕어'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언론사 경영의 어떤 부분을 뒤지게 될까. 국세청의 세무 조사는 명목상 정기 법인세 조사다. 세전 이익 1억원까지는 16%, 1억원 초과분에는 28% 세율이 붙는 법인세를 제대로 납부했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사 내용은 수입과 지출의 적정 계상 여부가 된다.

하지만 국세청은 대주주의 주식 이동 현황, 자회사와의 관계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언론계에서는 이번 조사를 사실상 특별 세무 조사라고 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법인세 조사 이후 특별 세무 조사로 확대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법인세뿐 아니라 상속세·증여세·양도세·부가세·소득세 납세 실적을 모두 조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세청의 세무 조사 결과 어떤 탈루·탈세 사례가 밝혀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언론계 일각에서는 법인세의 경우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점친다. 법인세를 줄이거나 안 내기 위해 수입은 적게 잡고 지출은 높여 잡는 '관행'과는 정반대의 회계가 발견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력지의 경우 1등 경쟁을 벌이면서 몸집 부풀리기에 골몰해 왔고, 비유력지는 해마다 누증하는 적자로 대외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경계해 적자 폭을 줄이는 데 골몰해 온 점이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방증으로 꼽힌다.

따라서 이번 세무 조사가 법인세 조사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부문으로 조사가 확대되어야 언론사 경영의 요지경이 그 형체를 드러낼 것이다.


● 주식 이동 :

족벌 언론사의 경우 2세 경영에서 3세 경영으로 옮아가고 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한국일보>가 최근 3세 경영을 본격화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유 지분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점검한다면 증여세 등의 성실 납부 현황이 밝혀질 것이다.


● 주식 투자 :

코스닥이 활황이던 1998∼1999년에 언론사는 적지 않은 IT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IT법인이 출범할 때 지분 참여를 한 것이다. 일부 언론사의 경우 사고 팔기를 거듭하면서 시세 차익을 남긴 사례가 있지만, 대다수 언론사의 경우 보유 주식을 팔아 이익을 남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 내부 거래 :

중앙 언론사 중 현재 '재벌 언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언론사는 없다. 각각 삼성·현대·한화 그룹의 자회사였던 <중앙일보> <문화일보> <경향신문>이 분리되어 '독립 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일부는 과거의 모그룹으로부터 광고 지원 등을 받아왔다는 의심을 사왔다. 또 언론사가 차린 자회사의 경우 독립 채산의 여지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리베이트 :

언론사가 1년에 소모하는 종이값은 엄청난 규모다. 발행 부수 2백만부를 자랑하는 유력지의 경우 종이값이 연 수백억원대에 이른다. 또 증면 경쟁과 컬러 인쇄 경쟁이 불붙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들여온 윤전기도 적지 않다. 윤전기 가격은 한 세트에 대략 1백50여억 원. 덩지가 큰 이 두 항목에서 적지 않은 리베이트가 오간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고 있다.


● 협찬 :

언론사가 너나없이 치르는 갖가지 행사에는 억대 협찬금이 오간다. 그러나 1회에 수억원에 이르는 기업 협찬금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잘 모른다.


● 해외 수입 :

각 언론사는 해외에 지사 등을 설치해 운영하거나 해외판 신문을 발행한다. 이 과정에서 창출되는 수입이 국내로 들어오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반면 한 언론사의 경우 사주 일가의 해외 재산 현황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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