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 전쟁' 끝내 도발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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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중학 교과서,
검정 통과 확실…자민당 '방관'


일본의 우파 단체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사모임)이 일제의 한국 병탄을 동아시아 안정 정책으로, 태평양전쟁을 아시아 해방 전쟁으로 왜곡해 편찬한 2002년도 중학 교과서가 곧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할 예정이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일본의 과거 침략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한 이 역사 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정식 통과한다면 한·일, 중·일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문부과학성은 '이 교과서가 1차 검정 때 내린 수정 지시를 준수했기 때문에 불합격시킬 이유가 없다'는 태도이다. 또 일본 정부와 자민당 수뇌부는 "현재의 검정제도에서는 기술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지 않는 한 문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정치인이 개입할 소지가 없다"라며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를 극구 꺼리고 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 수뇌부가 방관하고 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우선 새역사모임이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도록 적극 지원해 온 것이 바로 자민당의 대세를 이루는 우파 의원들이다. 또 새역사모임을 지원 사격해 온 우익 언론들의 집요한 공세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우익 신문·자민당 우파 적극 지원


예컨대 새역사모임을 적극 옹호해 온 <산케이 신분>은 지난해 10월13일 1면 머리 기사로 '외무성 출신 교과서 검정 심의의원이 특정 역사 교과서(즉 새역사모임이 편집한 교과서)에 대한 검정 불합격 공작을 하고 있다. 이 전직 외교관은 다른 교과서 심의의원들에게 전화와 팩스로 인근 국가의 반발을 사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며, 특정 역사교과서를 최종 검정에서 탈락시켜 달라고 요구했다'라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자민당 교육개혁실시본부는 문부성(당시)에 그 심의의원을 색출해 즉각 경질하라고 요구했다.

우익 언론들과 자민당 우파의 거센 압력을 받은 문부성은 그 달 말 외무성 출신 심의의원 노다 에지로 전 인도대사를 경질해 교과서 가격을 조사하는 '교과용 도서 가격 분과회'로 좌천시켰다. 이 사건은 새역사모임을 옹호하고 있는 두 세력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 사건을 처음 터뜨린 <산케이 신분>은 이들을 엄호 사격하는 전위부대나 마찬가지이다. 류큐 대학 다카시마 노부요시 교수 등은 지난 1월 말 새역사모임과 <산케이 신분> 그리고 계열 출판회사인 후쇼샤가 다른 교과서를 비방 중상하고 있다며, 이들을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다카시마 교수 등은 고발장에서 '<산케이 신분>과 후쇼샤가 1997년 말 새역사모임과 각서를 체결하고 문제의 교과서를 팔기 위해 다른 회사 교과서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재하거나, 그런 내용의 책과 팜플렛을 제작하고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케이 신분>은 '우리 신문사는 회사 차원에서 특정 교과서 제작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고발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일본공정거래위원회 몫이다. 그러나 새역사모임이 편집한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려는 출판사가 <산케이 신분> 계열 회사인 후쇼샤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산케이 신분>은 새역사모임의 3총사로 불리는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학 교수(회장), 후지오카 노부가쓰 도쿄 대학 교수(이사),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이사)를 '세이론(正論)'이라는 칼럼에 등장시켜 새역사모임의 존재와 그들이 주장하는 황국사관을 널리 유포해 왔다.

앞서 말한 대로 문제의 역사 교과서는 일본 국내의 반대 운동과 한국·중국 정부의 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곧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상공에 떠도는 제2의 교과서 파동이라는 먹구름이 폭풍우로 변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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