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위해 환경 파괴하는가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6.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새만금 순차적 개발 확정…

'전북 표 얻기+부처 이기주의'가 낳은 무리수


정부가 또 악수를 두었다. 시작부터 무리수였던 새만금 사업을 밀어붙이기로 결정함으로써 '최악의 선택'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환경 단체와 종교계·학계·문화예술계·법조계·의료계 인사 1천4백45명은 지난 5월25일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하루 전인 5월24일에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를 하며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기도 수행을 한 바 있다. 또 5월27일에는 어린이들로 구성된 '미래 세대 33인'이 새만금 사업 강행을 주장한 주요 인물들의 발언록을 담은 타임캡슐을 묻고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지난 5월28일 새만금평가회의 위원 4명(권태준·서한태·장재연·장회익)이 '새만금 사업 강행 발표 과정에서 문서가 조작되었다'고 폭로한 뒤 새만금 무효화 투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의 임시 자문기관으로 발족한 새만금평가회의는 '새만금 사안은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은 최종 결정자를 '대통령' 아닌 '정부'로 바꾸어 멋대로 강행 결정을 내렸다고 장회익 교수(서울대·물리학)는 밝혔다. 장교수 등은 이처럼 적법 절차를 무시한 정책 결정은 무효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조제를 완공한 뒤 동진강부터 먼저 개발하기로 한 '순차적 개발 방안'은 애당초 정부가 고집했던 '개발 강행 수단'에 불과하다. 시화호 사건 이후 수질 문제가 불거지는 등 개발 반대 여론이 드높아지자 농림부를 비롯한 사업 추진 당국은 지난해부터 대안 아닌 대안으로 순차적 개발안을 내놓았고, 5월25일 국무총리실 주재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가 최종 결정안으로 확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법적 절차 무시"




그러나 이 결정은 국민을 설득하고 새만금 논쟁을 종식시키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이번에 새만금평가회의 소속 위원 4명이 폭로한 데서도 드러났듯, 왜곡된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불만은 일부 환경론자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 시작 전에 해당 지역 주민과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정부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였고, 반대 여론이 들끓은 뒤에도 사업 타당성을 공정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개발 지속 논리를 개발하는 데에만 치중한 정부의 처사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여영학 변호사는 "새만금 사업은 시작부터 결정까지 전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무시한 사례가 부지기수다"라고 비판했다.


또 순차적 개발안이 개발 반대측에서 제기했던 수많은 문제 가운데 오직 한 가지만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도 문제이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환경(갯벌 생태)·수질·경제성으로 나뉘는데, 정부는 다른 논쟁들은 모두 무시한 채 수질 문제 해법만 담은 대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규모 방조제 사업으로 인해 파괴될 갯벌 생태라든가 서남해안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경제적인 타당성도 재고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해양학자 열 명 중 여덟 명은 새만금 개발이 해양 생태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또 조류학자들은 간척 사업이 조류 서식지를 위협하기 때문에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부 부처인 해양수산부까지 갯벌 소실과 해양생태계 파괴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다고 밝혔지만, 결정 과정에서 묵살되었다.


사업의 경제성을 두고서도 초기부터 말이 많았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마당에 구태여 엄청난 돈을 들여 농지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에서부터 새만금 간척지를 농·공 복합단지로 만들지 않고서는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또 지난 5월7일부터 열렸던 공개토론회에서는 경제성이 있다는 정부 논리의 상당 부분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국민 여론 또한 새만금 개발에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고, 80% 이상은 현 상황에서 새만금 사업을 강행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이 모든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강행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전문가 집단의 충고와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개발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배경에는 사업 시행 부서인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의 '부처 이기심'이 깔려 있고(〈시사저널〉 제605호 참조), 심지어 현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4·26 재·보선 때 여당이 '아성'인 전북 지역에서 참패한 것은 새만금 사업 중단 때문이라는 것이 여당 내 여론이었다. 따라서 여당이 내년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전북 표를 얻기 위해서는 새만금 사업에 '목 매는' 전북 민심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환경단체 "정권 퇴진 운동 펴겠다"




이번에 새만금평가회의 제안서를 변조하면서까지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가 사업 재개를 결정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재연 교수(아주의대·예방의학)는 "새만금 논쟁이 뚜렷한 결론 없이 소모적인 갈등으로 치달았던 것은 모두가 책임 지기를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만금평가회의에서는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결정하라고 건의했는데, 국무조정실이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문서를 변조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정부는 전북 민심을 얻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환경·시민 단체를 비롯한 새만금 사업 반대측을 끌어안는 데는 실패했다. 새만금 사업 반대측은 사업 결정 무효화를 주장하며 정권 퇴진 운동까지 계획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최 열 사무총장은 "여론과 전문가 집단의 충고를 무시한 채 정치 논리로만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정권 퇴진 운동을 해서라도 새만금 강행 결정을 무효화시키겠다"라고 말했다.


'새만금 사업을 조속히 결정해 소비적인 국론 분열을 막겠다'던 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른 형국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