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엔 독극물 지하수엔 기름 유출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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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주유소 탱크가 '용의자'


이기훈씨(가명)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6호선을 이용한다. 이씨는 태릉입구역에서 타서 증산역에서 내리는데, 녹사평역을 지날 때마다 악취에 시달렸다. 지난 2월22일 이씨는 참다 못해 도시철도공사 홈페이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문의했다. 도시철도공사는 '원인을 찾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는 원인을 알면서도 쉬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5월31일 환경부는 녹사평역의 지하수가 모이는 집수정으로 하루 몇ℓ 정도의 기름이 스며들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씨가 맡은 악취는 바로 집수정에서 새어나오는 휘발성 냄새였다. 지난해 12월22일 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처 직원들은 선로를 수리하면서 녹사평역의 집수정에서 강한 휘발성 냄새를 맡았다. 지난 1월2일 도시철도공사는 지하철 건설본부에 보고했고, 용산구청은 2월부터 정밀 검사에 착수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소에 의뢰해 지하수에 기름 성분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용산구청은, 녹사평역 주변에 있는 유류 저장 시설 15개를 점검했다. 용산구청은 한 군데에서도 기름이 유출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근 지역 토양과 수질 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용산구청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구청은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가는 한 군데를 꼽았다. 바로 녹사평역에 인접한 용산 미8군기지. 용산구청 관계자는 "미군기지에서 기름이 흘러나온다고 100% 확신했다. 환경부에 보고하고 미8군 시설을 조사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4월11일 용산기지 조사를 요청하고, 5월24일 용산기지 안 주유소 부근에서 기름이 샌 흔적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 관계자는 "계속 조사 중이다.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미8군기지에서 기름이 유출될 만한 곳은 주유소이거나 사용하지 않는 기름 파이프다. 미8군기지 안의 주유소는 현재 2곳이다. 한 곳은 반포대교에 진입하기 직전에, 다른 한곳은 녹사평역 3번과 4번 출구에 인접한 사우스 포스트에 있다. 녹사평역 쪽 주유소는 5월31일까지 SK가 미군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운영하다가 6월1일부터는 미군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용산구청이 기름이 유출되었다고 심증을 두고 있는 곳이다. 이 주유 시설은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언덕에 위치해 지하 34m의 녹사평역으로 기름을 흘린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 내부 관계자는 최근 이 주유소 지하 저장 탱크에서 기름이 새어, 막는 공사를 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주유소뿐 아니라 지하에 매설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낡은 파이프에서도 기름이 새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 관계자도 기지 안에 노후 시설이 많다고 인정했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2004년까지 환경 관련 예산으로 1억 달러를 집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주에서는 논바닥에 '미군 기름' 범벅


지난해 5월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에 이어 또다시 터진 지하수 오염에 대해 주한미군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독극물 방류로 재판에 회부된 맥팔랜드의 재판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잇달아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19일 강원도 원주시 캠프 롱 미군기지 주변의 태장2동에 기름이 유출되어 인근 논바닥이 기름범벅이 되었다. 기름이 묻은 땅에 불을 붙이면 곧바로 불꽃이 타오를 정도로 심각했다. 주민의 식수도 오염되었다. 시민단체와 원주지방환경관리청이 유출된 기름을 분석해 보니,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미군만이 사용하는 엑슨 모빌 사의 'JP-8'(항공유)였다. 그런데도 미군 관계자는 기름 유출 사실을 부인하다가 6월1일 한·미 합동 조사가 있은 뒤에야 부대 안에서 기름이 유출되었다고 인정했다.


이같은 미군의 환경 오염에 대해 녹색연합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부 등 시민단체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비난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결성된 전국 15개 '미군기지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협의회'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미군기지의 환경 관련 시설을 1년에 두 차례씩 조사할 수 있는 '미군주둔지역지원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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