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죽인 자식의 '고해성사'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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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징역 받은 이은석씨, 수녀 등에게 사건 전말 '고백'


이기석씨(28·가명)는 지쳐 보였다. 얼굴은 한눈에 보아도 수척했다. "몸무게가 4kg이 빠졌다. 꾸역꾸역 살아온 1년이었다"라며 이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몸무게뿐 아니라 살 기력도 잃은 것 같았다.


이씨에게 지난 1년은 악몽 그 자체였다. 이씨는 지난해 5월21일 부모를 토막 내 살해한 이은석씨(26)의 친형이다. 그로서는 부모가 살해되고, 그 살해범이 다름 아닌 동생이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다.




비극 : 모범생이었던 이은석씨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한 사람도 사귀지 못했다. 그는 일기장에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건 당시 이은석씨는 모든 언론으로부터 부모가 등록금을 대주지 않자 살인을 저지른 패륜아로 지탄받았다. 하지만 〈시사저널〉은 단독 입수한 이은석씨의 글을 분석해 부모와의 갈등·따돌림이 부른 참극이라고 보도했다(제554호 참조).


명문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모범생'이었던 은석씨가 엽기적인 살인범으로 돌변한 진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최근 이은석씨 사건을 연구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를 발간한 이훈구 교수(연세대·심리학)는 그 답을 '부모의 자녀 학대'에서 찾고 있다(11쪽 상자 기사 참조). 이교수는 은석씨 사건을 특별하지 않은, 늘 우리 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진단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이씨 사건은 재조명되고 있다.


효(孝) 윤리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존속 살해에 시체 유기까지 저지른 이은석씨는 100% 사형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은석씨가 사형을 면한 데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그를 도운 형의 역할이 컸다. 부모의 구박과 대화 단절을 똑같이 경험한 기석씨는 친척들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 옥바라지를 도맡았다. 그는 사건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은석씨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기석씨는 동생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한 재판을 수임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가 없었다.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가 기석씨에게 황산성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다. 황변호사는 1994년 부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찌르고 불을 질러 살해한 박한상씨를 변론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황변호사와 최용근 변호사가 선뜻 변론을 맡아 주었다. 이은석씨는 지난해 12월1일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예상한 결과였다. 최변호사는 "실정법으로 따지면 은석씨는 빠져나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4월18일 2심 고등법원에서 이은석씨는 무기 징역을 받았다. 재판부는 "정신 감정 결과 극도의 우울증·불안감·피해 의식·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다"라며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재판정에서 기석씨는 울고 말았다.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은석씨는 7월20일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도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같은 재판부의 이례적인 판결 뒤에는 이기석씨뿐 아니라 천주교측의 구명 운동도 한몫을 했다.


이은석씨는 1심 재판을 받고 이감된 안양교도소측에 천주교 신부나 수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안양교도소 교목 담당이던 엘제 수녀는 지난 2월 이은석씨와 첫 만남을 가졌다. "내 사건을 아세요?" 이은석씨가 엘제 수녀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제 입으로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았다. 이은석씨는 울면서 고백했고, 이야기를 듣던 수녀마저 눈물을 쏟고 말았다. 눈물로 회개했던 은석씨는 엘제 수녀에게 재판을 방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로서는 낯선 사람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연 것이다.


엘제 수녀는 이은석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2심 재판부터 재판에 참석했다. 그런데 2심의 첫 재판이 2주 뒤로 연기되었다. 그녀는 이를 '하늘이 이 아이를 살리려는구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천주교계가 이은석씨 구명에 나섰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대주교가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사형 집행에 반대하는 수녀들이 재판 때마다 수녀복을 입고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동생 구한 형은 무력감에 시달려


수인 번호 3657번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이은석씨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달에 네 번씩 만나는 엘제 수녀, 이은석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그를 면회 오는 30대 중반의 여성은 은석씨의 둘도 없는 말벗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형 이기석씨다. 동생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1년을 버텨온 기석씨는 지금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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