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검찰은 전리품"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직에 자기 사람 앉혀 '인사=망사' 초래…
일부 검사 로비 치열, 조폭에까지 '청탁'
이용호 게이트로 만신창이가 된 검찰이 상처를 추스르기도 전에 녹취록 사건으로 또 한번 발등을 찍혔다. 이 녹취록은 지난해 말 한 벤처 기업의 주식을 빼앗기고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진정인 박 아무개씨가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당시 서울지검 동부지청 김진태 부장검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담은 것이다. 10월17일 야당이 폭로한 이 녹취록에는 검찰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 정치인이 누구냐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 판에 '민주당 이상수 원내총무가 수사하는 데 자꾸 전화한다' '이 정권 들어 정치인이 깡패하고 다 연결되어 있다'는 부장검사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또 김 전 부장은 '정치권에서 노하면 검사장은 못되는 거야' '검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잖아'라고 말해 정치 외풍에 무기력한 검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DJ 정권 '한풀이 인사'로 일관"


검찰 간부가 개인적으로 공권력을 휘두른 사건이 또 터지자 검사들은 고개를 못 들겠다며 한탄한다. 출세에 눈이 먼 검사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법이 부여한 공권력을 개인적으로 사용해 검찰의 위상을 구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들은 이런 사람들을 중용하는 잘못된 인사가 검찰 위기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만나는 검사들마다 '인사 개혁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검찰 인사가 난맥상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5공 때부터 지연과 학연이 인사에 절대적 영향을 끼쳐 왔다. 검찰 인사는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MK(목포·광주)와 같은 지연과 경기고·고려대 출신 같은 학연에 따라 춤을 추었다. 6공 때는 TK가, YS정권에서는 PK가, 현정권 들어서는 MK가 득세했다.


역대 정권은 사정기관들의 사령탑인 검찰을 전리품쯤으로 생각하고 요직에 자기 지역 사람을 앉혔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12월 조사한 검찰의 지역 편중 인사 실태를 보면, 1997년 3월 현재 전국 검찰 요직 46개 가운데 17개(37%)를 PK 출신이 차지했고 3개(7%)만 MK 출신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정권 교체 후인 1998년 3월 MK 출신이 전국 요직의 25%(12개)를 장악했고 PK 출신은 7%(3개)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지역 편중 인사야말로 검찰 중립화를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역대 정권 중에서도 특히 현정권이 좀 지나쳤다는 것이 검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집권 초기에는 그나마 인사 원칙을 지켰지만 나중에는 '한풀이'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사 경험이 필수인 서울지검 특수부에 '특'자도 모르는 검사들이 몰려왔다. 호남 출신 검사의 경력을 관리해 주려고 배려한 결과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덕선 전 특수2부장이다.


한 검찰 간부는 "특수부장은 황소같이 덤비는 부하 검사를 설득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특수 수사 경험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덕선씨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정길 전 법무부장관이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한 말이다.


요직을 차지하려는 로비도 치열했다. 현정권에서는 검찰 인사철이면 어느 때보다 잡음이 많았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조직폭력배에게 끈을 댄 인물도 있었다는 것이 검사들의 귀띔이다. 현정권 실세들이 호남 지역 조폭들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반대로 과거 정권 때 조폭 소탕에 열성이었던 한 소장 검사는 현정권 들어 수사와 상관없는 보직을 계속 전전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강골 검사들은 발 붙일 자리가 없어졌다. 검찰 출신 함승희 의원은 "YS 때만 해도 검사 중에는 살아 있는 권력과 한판 붙어보려는 낭만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인물이 없다. 수사하면 다친다는 피해 의식만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강골 검사'들, 물 먹다 사직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낭만은 초임 검사 시절부터 싹이 잘린다는 것이 검사들의 전언이다. 검사들에 따르면 검사는 3년 내에 A·B·C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부장검사들의 평이다. 이 평판이 기준이 되어 검사들의 후임지가 결정되고 후임 부장들이 검사를 낙점한다(이를 '조패'라고 한다). 특수부와 공안부 검사를 가장 먼저 낙점한 다음 형사부 검사를 찍는다. 이때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실력보다는 팀워크라고 한다. 의욕이 너무 앞서 관리하기 어려운 검사라는 낙인이 찍히면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다. '강골 검사'라고 소문 나 두세 번 물을 먹으면 결국 옷을 벗어야 한다. 이런 강골 검사를 부장검사들이 피하는 것은 외압 탓이다. 한 특수부장 출신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려면 귀신같이 알고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전화해 온다. 보통은 안부를 묻는다. 수사가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또 전화가 온다. 한번 고려해 보라는 부탁이다. 그래도 수사를 계속하면 검사장한테 전화해 자꾸 다그치게 만든다. 밑에서 치이고 위에서 눌리는 것이다. 딱 떨어지는 사건이 아니면 수사가 안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설득하기 힘들면 사정한다. 특수부 수사라는 것이 열에 여덟은 그런 식이다."


이렇게 위 아래로 치이기 때문에 출세의 지름길로 여기는 특수부장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생겼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편안한 형사부를 맡아 인맥 넓히기에 골몰하는 것이 최근 검찰의 한 풍경이다.


1998년 2월 정권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간사 김정길 전 법무부장관)는 검찰 중립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 진단에 따라 정부는 1998년과 1999년 연이어 인사개혁안을 포함안 검찰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지금까지 시행을 미루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