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제주 사건의 사실과 진실
  • 제주·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11.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야 '아니면 말고 식' 정치 공방이 빚은 촌극
그야말로 홈런성 '폭로'였다. 한나라당 재·보선 후보 3명을 모두 국회로 불러들인 적시타였다. 10·25 보선을 한나라당 압승으로 이끈 수훈 갑은 단연 'K2(김홍일) 제주도 휴가 스캔들'을 폭로한 한나라당 유성근 의원이다.




10월19일 유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이용호 게이트' 배후로 김홍일·권노갑·정학모 씨를 실명 거론했다. 유의원이 들고 흔든 유일한 증거는 '이용호 게이트 몸통 의혹 정학모 관련 동향'이라는 정보 보고서였다. 지난 8월4∼6일 김홍일 의원의 제주도 여름 여행에 관한 정보 문건이었다.


이 보고서는 제주경찰청 정보과 임건돈 경사(56)가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기관의 보고서가 야당에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자 파문은 컸다. 민주당은 곧장 '주문 생산' 또는 '경찰 프락치 사건'이라며 역공을 폈다.


재·보선이 있기 하루 전인 10월24일 취재진은 제주도를 찾아 문건 유출 과정을 추적했다. 지난 10월9일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이영민 사무처장은 김견택 조직부장(38)에게 김홍일 의원의 여름 휴가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1995년부터 당직 생활을 시작한 김부장은 한나라당 담당 형사이자 선후배처럼 지내던 제주경찰청 정보과 임건돈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사우나를 하다가 전화를 받은 임경사는 "김의원이 왔다 갔다. 아마 사무실에 명단이 있을 것이다"라며 통화를 끝내고, 경찰청으로 돌아가 9월29일 자신이 작성했던 문제의 보고서를 한나라당 제주도지부에 팩스로 전달했다. 문건을 건네받은 김부장은 이를 사무처장에게 넘겼고, 사무처장은 중앙당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가 10일이 지난 뒤 '김홍일 게이트'의 물증으로 제시된 것이다.


"정보 형사의 감으로 문건 제목 작성"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정경호 대변인은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 우리도 미처 몰랐다"라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김의원이 8월4일 10시15분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부인과 두 자녀, 지인(知人) 14명을 대동하고 휴양차 내도. 신라호텔에서 2박3일간 휴양 후 8월6일 14시30분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이도' 등 눈에 띄는 제목과 달리 평이했기 때문이다.


김의원의 휴가 일정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던 이영민 사무처장은 "중앙당의 특별한 주문은 없었고, 김의원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려 내용을 알아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중앙병원 503호에 입원 중인 임경사도 "특별한 정보가 있었다면 내가 내주었겠느냐? 논란이 된 제목은 〈세계일보〉 기사를 참고해 정보과 형사의 감에 따라 작성했다"라고 해명했다.


임경사는 경찰 생활 30년째로, 절반 이상을 정보과에 몸담았다. 정보과 형사로서 재직 기간 대부분을 한나라당에 출입했고, 한나라당이 여당이었을 때 1주일에 한번씩 도지부 사무실에 들를 정도로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나라당 제주도지부와 임경사에 따르면, 이전에도 일상적인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다. 결국 야당 당직자와 정보과 형사의 너무 가까운 사이가 이번 사태의 화근이 된 셈이다.


파문이 확대되자 관련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해프닝'이라고 입을 모았다. 단순한 보고서가 마치 이용호 게이트의 물증인 양 중앙 정치권에서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정보 유출 당사자인 임경사는 "절대로 정치 흥정은 없었다. 내년에 정년 퇴직하는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서 정치권에 줄을 대겠느냐"라며 뒷거래설을 일축했다.


'K2 의혹' 불씨 남겨


민주당 제주도지부의 한 당직자도 "주문 생산이나 프락치 사건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라며 중앙당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경찰의 수사도 금품 수수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지금까지 수사는 진전되지 못한 상태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0월24일 제주도내 시민단체는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싼 사건의 진위보다 여야가 서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 문건을 활용했다"라고 중앙 정치권을 비난했다.


그러나 K2와 관련한 의혹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제주ㄱ관광호텔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여운환씨가 김의원과 같은 때에 제주도를 찾았고, 이용호씨 역시 그때 제주도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내년 대선 때까지 K2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제기할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아들은 영광이라기보다 오히려 멍에라고 말하는 김홍일 의원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