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관계 ‘동파’ 되나
  • 서주석(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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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국해 괴선박 침몰 사건으로 더 꼬여…한국 대북 정책에도 악영향 우려
지난 12월22일 동중국해에서 발생한 괴선박 침몰 사건이 동북아에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출현해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교전하다 중국의 EEZ에서 침몰한 문제의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물증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미·일 정보 당국이 추적한 바에 따르면 괴선박은 북한의 서해 항구를 출발해 항해 중 북한 노동당 주파수로 교신했다. 또한 옛 소련제 로켓포를 발사했고 인양된 유류품 중에는 한글이 씌어진 구명조끼 등이 있었다.





북한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 평양방송은 12월26일 “일본의 적대시 정책이 빚어낸 엄중한 모략극”이라고 비난했다. 27일에는 외무성 대변인이 “북한에 대한 중대한 모략 행위로서 금후 일본측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대응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북한의 저질스런 비판은 타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면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또 다른 ㄴ 당사자인 중국 정부는 12월23일에 “일본이 동중국해 해역에서 군사력을 사용한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든 간에 이미 최악의 상태에 있는 북·일 관계는 더욱 꼬이게 되었다. 지난 1999년부터 관계 개선을 서둘렀던 북·일은 지난해에 세 차례의 수교 회담을 열었으나 일본인 납치 의혹이나 대북 수교배상금 등 현안에 대해 전혀 의견 접근을 못했다.



지난해 초 미국에서 부시 정부가 출범한 데 이어 일본에서도 보수 성향의 고이즈미 내각이 등장해 일본은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동기를 상실한 상태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일본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거듭하고 있다.



양측 모두 정면 충돌은 피할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으로 양국 관계가 완전 파국을 맞을 것 같지는 않다.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이라는 확증을 얻기 위해서는 침몰된 괴선박을 인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중국 정부가 협조할지 불확실하다. 설령 일본이 확증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1999년의 동해상 괴선박 도주 사건 때와 같이 조작이라면서 계속 잡아뗄 것이다. 일본도 북한과의 정면 충돌은 피하려고 할 것이다. 북·일간에는 어차피 굵직한 현안이 많아 이 사건이 결정적인 장애가 되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 미국 정보 당국의 ‘은밀한 역할’을 근거로 이번 사건을 반 테러 전쟁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과 관련해서 보는 견해들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테러와 연결되었다는 확증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 지원국 규정 등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지난 한 해 동안 매우 어렵게 이어져 온 남북 관계에 또 하나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일 당국 간의 논전에서 우리가 특정한 입장을 선택할 경우 비록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해도 남북 관계에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북·일 관계가 계속 악화하면 미·일 등과 함께 경제 지원을 해 북한 체제의 전환을 도모한다는 우리의 대북 정책이 계속 유보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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