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특검팀, 양날 다시 간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2.01.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승환 구속→신승남 총장 사퇴’ 이끌어내…정·관계 로비와 검찰 비호 세력 ‘정조준’
1월13일 일요일, 신승남 검찰총장에게는 가장 긴 하루였다. 이 날 오전 신총장은 성당을 찾았고, 동생 승환씨(49)는 서울지방법원(담당 윤병철 판사)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신총장은 과연 무엇을 기원했을까? ‘영장 발부와 기각.’ 그 갈림은 동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생 승환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총장직 사퇴서나 마찬가지였다.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된 영장실질심사는 오후 5시50분에 끝났다.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접한 신총장은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날 밤 11시20분 이중훈 대검공보관은 신총장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형제에게는 ‘13일의 악몽’이었다.


반면 차정일 특별검사팀은 활기를 띠고 있다. ‘특검이 아니라 특검 할아버지가 와도 새로울 것이 없다’던 검찰의 공언을 특검팀은 보기 좋게 뒤집었다. 수사 개시 30일 만의 개가였다.


특검팀이 성과를 내기까지 그동안 고비가 많았다. 특검팀은 출발부터 ‘구인난’에 부딪혔다. 변호사들이 특검호 승선을 꺼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심재륜 고검장이 말했듯이 이용호 게이트가 워낙 복잡한 데다, 특검법이 개정되어 특검팀이 공소 유지까지 담당해야 하기에 합류하기를 꺼렸다. 우여곡절 끝에 이상수 변호사(46)와 김원중 변호사(46)가 특검보를 맡았고, 로펌을 상대로 특별수사관 협조를 요청해 30대 ‘젊은피’ 성창익(31)·김석종(37)·이영희(30) 변호사를 수혈했다.



검찰에서는 1997년 김현철 비리 사건을 파헤친 대검 중수부 드림팀 송해은 검사,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기록(20세)을 보유한 우병우 검사, 윤대진 검사 등을 파견했다. 전직 경찰관 2명과 차정일 특별검사의 변호사 사무실 법무실장 2명이 특별수사관으로 가세했다.


특검팀 면면이 알려지자 검찰은 안도했다. 특검팀에 합류한 변호사 가운데 눈에 띄는 ‘수사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수사통은 형사부 부장검사 출신인 이상수 특검보 정도. 파견 검사야 친정에 칼을 들이댈 수 없는 처지였다. 최고의 수사통만 모였다는 대검 중수부가 3개월 동안 수사해 찾아낸 것이 없는 마당이니, 경량급 특검팀에서 나올 것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만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 기록 검토가 늦어지면서 ‘수사 능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검찰 쪽에서 흘러 나왔다. 특검팀은 ‘자질론’에도 시달렸다.


저인망식 계좌 추적으로 ‘개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차정일 특검은 “이용호 게이트의 성격상 수사통보다 세무 회계 전문가가 필요하다. 확실히 보여주겠다”라고 자신했다. 사실 차특검은 <세법학 개론>을 집필할 정도로 세무·회계에 조예가 깊다. 연수원을 마치자마자 개업한 재야 변호사 김원중 특검보 역시 경제통이다. 차특검은 아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계좌 추적 전문가를 2명 파견받아 ‘경제 특검팀’으로서 색깔을 분명히했다.


수사 개시와 함께 특검팀의 경제통들이 총동원되어 그야말로 이 잡듯이 관련자 계좌를 모두 뒤졌다. 이용호·여운환 씨는 말할 것도 없고 DJ의 처조카 이형택씨, 전 국정원 경제단장 김형윤씨, 신승환씨는 물론 그들의 가족 ·지인 계좌까지 관련 계좌를 모조리 뒤졌다. 법원 쪽에서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계좌 추적을 벌이기는 처음인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특검팀의 저인망식 계좌 추적은 성과를 올렸다. 여운환씨 가족 계좌 추적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기술거래소 사장 이기주씨(58)가 쇠고랑을 찼다. 여씨로부터 천만원을 받은 혐의다. 한국전자복권 자금이 이용호씨에게 흘러 들어간 사실도 밝혀냈다.


특검팀이 신승환씨를 압박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계좌 추적에서 새로운 뭉칫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승환씨의 지인 통장에서 뭉칫돈이 오간 것을 밝혀냈다. 검찰은 지난해 승환씨 수사 때 아예 계좌 추적을 하지도 않았다.



이같은 특검팀의 성과에 대해 검찰은 당황했다. 대검 간부들은 특검팀이 ‘오버’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쓰는 특검팀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을 때 비난의 화살을 모면하기 위해 무조건 기소하고 보자는 심사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신승환씨 같은 경우도 재판에 갔을 때는 무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검팀이 정작 몸통은 밝히지 못하고, 새로운 깃털만 뽑는 털갈이에 그칠 것라고 비난했다.


신승환씨 구속으로 기세를 올린 특검팀은 앞으로 양날 작전을 펼 예정이다. 정·관계 로비와 검찰 비호 세력을 밝히는 데 팀을 나누어 집중적으로 매달릴 작정이다. 승환씨를 매개 고리로 한 검찰 로비 부분에 대해 수사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당장 신승환씨가 고교 동기생이라며 접촉해 전별금을 전달한 검찰 간부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도 의혹이 있다면 조사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보인다.


신승환씨를 구속하고, 이로 인해 신승남 총장까지 낙마시킨 특검팀의 서슬 퍼런 칼날이 어디를 향할지 주목되고 있다. 좋아하는 술과 등산을 끊고 하루도 쉬지 않고 강행군하는 차정일 특검은 밥까지 사무실에 배달시켜 먹는다. 1월12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퇴근하는 차특검을 집앞에서 만났다. 차특검은 “수사팀이 눈에 불을 밝히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그에게서 피곤한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