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손인가, 검은 음모인가
  • 제주 · 고제규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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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지사 성추행 사건 ‘일파만파’…피해자 고발에 “명예훼손 고소”
지난 2월22일 오후 3시 제주여민회(여민회) 사무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근민 제주지사 성추행 사건 피해자 기자회견’에는 제주 경찰서·도청 관계자까지 참여했다. 여민회가 경찰과 공무원을 퇴장시키고 나서야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성희롱 피해자 고 아무개 대한미용사회제주시지부장(45)은 눈물부터 쏟았다. 고씨는 “도지사가 성추행을 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우지사는 정치적 음모론으로 몰고 있다”라며 입을 뗐다.


다음은 고씨가 주장하는 성추행 상황이다. 1월25일 오후 3시 고씨는 도지사실을 찾았다. 도지사의 면담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지사가 가까이 오더니 목 아래, 가슴 위쪽을 4∼5차례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겉옷의 두 번째 단추를 풀고 가슴을 만졌다. 고씨는 우지사의 손을 때렸고, 집무실에서 곧장 나오려 했다. 그때도 우지사는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지사는 “고씨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결코 가슴을 만진 적이 없다. 다만 반가운 표시로 어깨를 살짝 눌렀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했다. 일부 세력이 자신을 음해해 다가오는 선거에 낙선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우지사측이 제기한 일부 세력은 다름 아닌 신구범 전 도지사측. ‘제주도의 YS와 DJ’로 통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다. 모두 북제주 출신으로 나이(60)도 같아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다. 게다가 관선 도지사 시절 주거니 받거니 도지사를 맡았다. 우근민 현 도지사가 27대와 28대를, 신구범 전 도지사는 29대 도지사를 지냈다. 그런데 1995년에 치른 민선 도지사 선거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우씨를 공천하자, 신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도지사 자리 둘러싼 ‘숙적 갈등’





예상을 뒤엎고 신구범씨가 초대 민선 도지사에 당선했다. 고배를 마신 우씨는 1998년 3월 국민회의로 옷을 갈아입고 재도전했다. 여당인 국민회의 지원을 받은 우씨가 당선했다. 뒤집기 한판이었다. 두 사람이 1승씩을 주고받은 셈이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도 두 사람의 격돌이 예상된다. 신구범씨는 지난해 7월 한나라당에 입당해 일찌감치 표밭을 다졌다.


성희롱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고 아무개씨도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것은 아니다. 여성단체 간부여서 그녀는 선거 바람을 비켜갈 수 없었다. 10년 이상 우씨와 신씨가 격돌하다 보니 제주도는 공무원마저 둘로 나뉘어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우지사가 집무실로 고씨를 부른 이유도 선거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같은 논란과 무관하게 여성단체는 우지사에게 사과와 공식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하오영숙 여민회 사무국장(36)은 “성추행은 분명히 있었다. 이를 폭로할 때 가해자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했다. 대책은 마련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여민회 관계자는 2월5일 고씨가 도지사 사과를 받기 위해 면담한 자리에서 녹음한 녹음 테이프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21일 고씨는 우지사를 여성부에 성회롱 혐의로 신고했다. 그녀는 조만간 법적 절차도 밟을 예정이다. 우지사도 고씨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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