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빈을 볼모로 잡았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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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EU와 신의주 진출 ‘이면 협상’ 노린 듯…“세금 내면 곧 석방” 주장도
양빈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 연금 사태가 북·중간 외교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지난 10월4일 새벽 중국 공안의 전격적인 연행 조처 이후 사태를 관망하던 양국의 외교 채널이 본격 가동될 태세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적 앙금이 일부 노출되기도 했다.





북한측은 북한이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특별행정구 장관 직에 임명한 인물을 중국이 사전 협의 없이 연행한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은 북한도 양빈을 신의주특구 장관에 임명할 때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지 않느냐고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양국의 차관급 고위 인사가 상호 방문했다는 설이 돌고 있는데,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오는 10월15∼19일 중국을 방문해 이 문제를 양국이 깊이 있게 다룰 것이라는 전망도 나돌고 있다.



그동안의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감안할 때 이번 양빈 장관 연금 사태에는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은 북한 개혁·개방의 최대 후원자였다. 중국은 북한에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할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고 틈나는 대로 강조해 왔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던 북한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하고,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자본가를 특구 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개혁·개방 의지를 널리 알렸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를 적극 환영하고 후원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더구나 중국 사람과 다름없는 인물이 최고 책임자가 되었는데 말이다.



“중국은 신의주 특구 잘되기 바란다”



중국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의 배경을 추적하다 보니 국내 일부에서 제기한 몇 가지 설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우선 중국이 처음부터 신의주 특구를 반대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때 주룽지 총리가 개성에 특구를 만들 것을 권유했고, 신의주가 특구로 지정되면 외국 자본이 그쪽으로 몰려 상대적으로 단둥이나 동북 3성이 피해를 볼 것을 중국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얘기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신의주 특구가 못마땅하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한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평양이나 남포 등 중국과 면한 북한의 서북 지역은 특구 등으로 개발해서는 안된다. 북한 지도부의 ‘안보 우려’와 상관없이 중국이 보기에는 개성과 같이 남한과 면한 곳이 적당하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가 된다. 주권 국가 간에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시사저널>과 접촉한 중국측 소식통들은 이같은 이유로 중국 정부의 특구 지정 반대 주장 등이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한다. 중국이 신의주 특구를 반대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중국 신문의 한 특파원은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중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필요성이 중국 내에서도 대두하고 있다. 신의주 특구가 개발되면 이런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다”라고 그는 말했다.



중국 동북 3성에서 북한측과 사업을 하는 중국측 인사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는 양장관 연행을 순수하게 세금 미납 때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양빈 장관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추가 범법 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밀린 세금만 납부하게 되면 금방 풀려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다. 그는 양장관이 10월 중순쯤에는 한국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금 체납 문제는 사실 올해 초부터 중국 내에서는 논란이 되었던 것이기도 했다. 중국 내 굴지 부호들의 탈세 문제가 제기되자 주룽지 총리가 대대적인 조사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인기 영화배우 출신으로 거부가 된 류효청이라는 인물이 세금 포탈로 구속되어 중국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다. 또한 중국 제일의 갑부로 쓰촨성에서 희망그룹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한 인사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헌납해 조사를 면하기도 했다. 세무 조사가 양빈 개인만을 표적으로 삼지는 않았다는 얘기이다.



양장관에 대한 세무 당국의 조사는 그가 북한측과 긴밀한 관계에 돌입하면서부터 강도가 세졌다. 이에 대해 동북 3성에서 활동하는 경제계 인사는 양빈과 북한 간의 금전 거래 문제가 그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억6천만 달러 내고 신의주 임대?



그동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양빈이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이 된 것은 그가 특구 지역을 장기 임대 형식으로 돈을 주고 빌렸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m2당 16∼32 달러 정도의 임대료를 지급해야 한다. 신의주 특구의 총면적이 132㎢이므로 어림잡아 계산해도 1억6천만 달러 정도를 임대료로 냈을 것이다. 또한 해마다 7%의 토지세(약 1천5백만 달러)를 납부해야 한다. 양빈이 중국 2위의 갑부라 해도 이 정도 거액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식을 처분해야 했을 것이고 이것이 세무 당국을 자극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소식통의 지적대로 양빈은 장관에 임명된 직후인 지난 9월27일 홍콩 주식 시장에서 어우야농업의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분율 변동과 관련해 허위 신고를 했다는 혐의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세무 당국의 본격 조사가 시작되었다. 즉 거액의 세금 포탈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가 중국 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처분하려고 하자 세무 당국이 더 방치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중국 당국이 양빈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서방의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양빈이 신의주 특구 장관에 임명되었을 때만 해도 사건을 이렇게 크게 키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양빈이 장관 직에 임명된 사실을 중국 당국에 제대로 신고도 하지 않은 채 특구 관련 사항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한 데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양빈이 유럽인을 특구 법무장관에 임명하겠다고 발언한 내용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양빈이 중국측과 협의하지 않고 주로 유럽측과 협의해온 것을 미심쩍게 생각해 오던 중 그 발언이 나오자 본격적으로 의문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들이 배경에 작용했다면 중국은 양빈을 볼모로 잡아놓고 북한·유럽연합(EU) 등 관계국과 신의주 진출 문제에 대해 이면에서 협상하려는 심산일 수도 있다. 그 이면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중국의 이번 조처는 양빈에 대한 면죄부를 발급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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