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용 폭로, 김동신이 자초했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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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에 감청부대 조사 맡겨 감정 악화…군 수뇌부 ‘해바라기’가 사태의 핵심
전대북 감청부대장 한철용 소장의 폭로가 몰고온 논란이 뜨겁다. 당시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국방부 특조단(단장 정수성)은 “김동신 전 국방부장관이 문제의 항목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김장관이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있다는 정보부대의 보고 항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한소장의 국회 국감장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조단 조사에 따르면, 한소장은 군의 보안 규정을 어기고 군사 기밀을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상급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정치 군인’이다. 과연 그럴까?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소장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한소장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나온 유능한 정보 전문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공이 국제정치학인 데다 실무 경험은 없는 미숙한 고위직이었을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보안의 ABC를 알 만한 사람이 작심하고 국감장에서 폭로를 하게 된 배경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개중에는 김동신 전 장관이 화를 자초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관례 깨뜨린 표적 수사” 반발



군사 전문가 ㄱ씨는 김 전 장관이 서해교전 책임을 물어 기무사에 5679부대 조사를 맡긴 것이 이번 사태의 직접 계기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기무사와 5679부대는 정보사령부와 함께 군내 3대 정보기관이다. 이들은 각자의 고유 역할이 있고, 그만큼 각 부대의 자긍심도 강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대북 감청부대와 기무사를 통합하려고 했다가 실패했을 정도로 두 기구의 경쟁과 대립의 골은 깊다.



그런데도 김 전 장관은 기무사에 5679부대 조사를 맡겼다. ‘기무사가 특수 정보기관을 조사한 것은 창설 46년 만에 처음’이라는 한소장의 격한 발언처럼 한소장은 김 전 장관이 군 조직의 위계 질서나 관례를 깨뜨리면서까지 5679부대에 대해 ‘표적 수사’를 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5679부대는 1999년 연평해전 때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달 동안 연평도에서 천막을 쳐놓고 북한 함정의 교신 내용을 감청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했다. 그러나 지난 6·29 서해교전 때는 국방부가 ‘통신 감청 내용에 북한의 무력기습 공격을 사전에 예측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고 인정했는데도 부대장인 한소장이 김 전 장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또 이번 사태의 핵심을 보고 체계 혼선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청와대를 의식해 북한 함정의 ‘월선’을 굳이 단순 침범이라고만 해석하려고 했던 당시 김동신 장관 등 군 수뇌부의 자신감 없고 안이한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사태가 그렇다고 해서 한소장의 행동이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한소장의 폭로 뒤 미군은 한국군에 주는 정보가 정략적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 정보 교환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한소장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부대장 스스로 군 정보부대의 위신과 이미지를 추락시켰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한소장의 폭로를 서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바로 한소장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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