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팔아먹는 사람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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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회 전·현직 지도부, 이회창 지지 선언…“비리 저지른 정치 철새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10월29일 한나라당 후원회가 열린 서울 잠실 역도경기장에서 이무헌씨 등 ‘사단법인 5·18 민중항쟁 구속자회’(구속자회) 회원들이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을 두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광주 현지의 대다수 5·18 단체 회원들은 한나라당이 속고 있다고 본다. 후원회에 참석해 한나라당원들의 열렬한 박수 세례를 받은 이무헌씨 등은 선거 때마다 ‘정치 철새’ 행태를 보여온 탓에 5·18 단체 내에서도 신뢰를 잃은 사람들이다.


특히 이후보 지지 선언을 주도한 이무헌씨(44·전 5·18 구속자회 이사장)는 1998년 5·18 보상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짜 5·18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받게 해주고 1억1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2000년 5월 사기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시사저널> 제552호 참조). 이씨는 또 2000년 한국마사회 광주지점 매점 영업권을 무리하게 따내는 등 5·18을 이용한 이권 개입으로 여러 차례 잡음을 일으켰다.


이씨와 함께 구속자회를 이끌고 있는 위성삼씨(전 5·18 구속자회 상임이사)도 1998년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 때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위씨는 또 이무헌씨와 함께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과 서명을 복사해 만든 이른바 ‘DJ 도자기’를 한 개에 수백만원씩 받고 16대 총선 출마 예상자들에게 판매하려다 <시사저널>이 보도해 미수에 그쳤다(<시사저널> 제558호 참조).


10월29일 이후보 지지 선언을 발표한 황창옥 현 구속자회 이사장도 구속자회 회원들로부터 인심을 잃은 인물로 알려진다. ‘정통’을 자처하는 대다수 5·18 구속자 출신들은 지난해부터 이들 몇몇 간부의 일탈 행위에 실망해 ‘5·18 광주민중항쟁 동지회’(오항동)를 따로 결성해 활동해 왔다.




회원 의견 수렴 않고 멋대로 발표


‘5·18 철새’들의 정치 행각은 5년 전 대선 정국의 복사판이다. 1997년 10월27일 당시 이무헌 5·18 구속자회 이사장 등은 대다수 5·18 단체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무조건 용서해 국민 화합을 이루겠다’는 ‘국민 대화합을 위한 평화선언문’을 발표했다. 현 민주당 대표인 한화갑 의원이 당시 ‘총대’를 메고 광주에 내려가 일부 재야 인사들의 등을 떠밀어 이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선언은 결과적으로 당시 김대중 후보가 주창했던 ‘전두환·노태우씨 용서론’에 힘을 실어주고 영남 지역 유권자들에게 김후보의 화해 의지를 강조하는 메시지로 활용되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번 구속자회의 이후보 지지 선언 역시 구속자회 회원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7년 대선 정국 때 구속자회가 ‘무조건 용서’를 선언하자 5·18 기념재단과 유족회 등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도 구속자회의 이후보 지지 선언 뒤 곧바로 ‘5·18 민중항쟁 제단체협의회’가 반박 성명을 발표하고 정치 불개입 원칙을 천명했다.


5·18 단체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5월 항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거나(민주당) 이용하고 있는(한나라당) 세력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한봉 민족미래연구소장은 “한마디로 창피한 사건이다. 언제까지 5·18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것이냐”라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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