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소동은 각본 있는 드라마?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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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문제 제기→중유 공급 중단’ 신속 행보…9·10월 위기설과 묘하게 일치


북한 핵 문제만 나오면 한국의 언론과 보수 세력 들은 이성을 잃는 듯하다. 누군가 이모저모 따져볼라치면 일제히 달려들어 뭇매를 가한다. 근래에는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그랬다. 장관급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온 뒤 미국이 북측의 발언 내용을 거두절미한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집중 포화를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내년 1월까지 중유 공급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또 한번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정장관이 그동안 해온 말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가 왜 공격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단 한 가지 북한 핵문제를 부각해 이슈화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배치한다는 점을 빼고는.


그러나 1990년대 초 미국이 영변의 5MW 및 20MW 원자로와 관련해 핵개발 의혹을 제기할 때와 지금은 사정이 매우 다르다. 그때 미국은 최소한 위성 사진이라도 제시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뿐이다. 10월 초 제임스 켈리 특사가 강석주 부상을 만났을 때 들었다는 말. 그러나 그 조차도 북측에서는 미국이 거두절미하고 과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우라늄 원심분리기 구매 관련 영수증을 제시했다고 하나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설령 미국이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북한이 고기술 고비용인 우라늄 농축형 핵 개발에 들어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도 후속 대화가 필요했다. 그런 대화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절차를 밟으라고 북한에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 한반도 문제 주도권 완전 회복


그런데 미국은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뭔가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만 준다. 우선 대화 중단을 선언한 것부터가 석연치 않다. 그리고 곧바로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을 중단했다. 겉으로 보기에 북한의 고위급 관리 한 사람이 ‘그래, 했다. 어쩔래’ 수준의 말을 한 것을 가지고 1994년 이후 유지했던 제네바 합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부시 대통령이 나서서 “그러나 북한을 침공하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다. 중유 공급 중단이라는 조처가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인지 한국 정부는 현재 부시의 당연한 얘기에조차 감지덕지하는 분위기다. 결국 미국은 ‘핵 소동’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되찾아간 셈이다. 핵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어디 있나’하고 눈을 크게 뜨고 찾아다녀야 할 판이었는데 상황이 완전 역전했다. 정세현 장관이 핵문제를 너무 과장하다가 주도권을 상실했던 전례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던 말이 이미 현실화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상반기 몇몇 전문가들은 9·10월 위기설을 제기한 바 있다. 올해는 남한의 대통령 선거와 북한의 각종 행사(김일성 주석 90회 생일, 김정일 위원장 환갑 등)가 겹쳐 남북 관계가 꽃을 피울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이 한국의 대선을 앞둔 10월께 대북 문제에서 위기 상황을 연출할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전개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최근의 핵 정세가 그리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북한이 7월에 획기적인 경제 관리 개선 조처, 8월에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을 한 뒤 9,10월의 남북 대화 재개와 북·일 후속 대화 등을 앞두고 마치 이런 노력에 찬물을 뿌리기라도 하듯이 핵문제가 불쑥 불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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