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분신은 타살이었다”
  • 창원·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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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사측의 ‘가압류’ 못견디고 자살


지난 1월9일 새벽 5시, 배달호씨(50)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마산시 회원동 집에서 창원시 두산중공업 공장까지 그는 손수 운전을 했다. 정문을 통과한 배씨는 자기가 근무하는 보일러 공장의 길목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몸에 시너를 붓고 라이터를 당겼다. 복직 20일째, 그에게는 마지막 출근길이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분신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전국적인 투쟁을 선포하고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민주노동당(민노당)도 가세했다. 1월10일, 밤을 새워 시신을 지켰던 민노당 권영길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나서라”고 말했다. 재계는 애써 태연하다. 단위사업장 문제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두산중공업 회장은 재계의 대변인 격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 회장이다. 노동계는 즉각 박용성 회장에게 상공회의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노동계의 압박으로 박회장이 궁지에 몰린다면 재계로서는 전국경제인연합 김석중 상무의 ‘사회주의 발언 논란’ 이후 악재가 겹치는 셈이다.



2000년부터 두산중공업 노사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였다. 2000년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이 민영화 바람을 타고 두산에 인수되었다. 사측은 인수 첫해 1천2백명을 명예 퇴직시켰다. 그리고 추가로 직접 운영하던 사내 식당을 비롯한 관리부서 일부를 아웃소싱하려 했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에 부딪혔다. 사측이 주장하는 경영합리화 정책을 노조는 고용 불안으로 받아들였다. 노사 협상에서 사측은 노조의 반발에 밀려 아웃소싱 계획을 접었다. 1차 공방은 노조의 판정승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2차 공방은 달랐다. 노동조합은 회사측에 개별 협상이 아닌 산별 협상을 요구했다. 2001년 민주노총 산하에 금속노조가 탄생하면서 두산중공업은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현 금속노조 위원장은 두산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창근씨다. 회사로서는 집단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다. 회사측 관계자는 “산별노조를 만들어 기본 협상이라는 것을 들고 와서 자구 하나 못 고친다면 그게 협상이냐?”라고 말했다. 회사는 개별 협상을 고집했다. 노조는 협상 의지가 없다며 5월22일 파업을 시작했다.


5월23일 회사는 노조에 단협해지를 통보했다. 단협해지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강수였다. 노조는 47일 동안 파업했다. 양측은 한치 양보 없이 대결했고, 7월7일 창원시 부시장을 비롯한 시민중재단이 나선 뒤에야 파업이 풀렸다.



하지만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회사측은 노조 집행부를 포함해 61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 고발했고, 65억원을 손해배상 청구했고, 18명을 해고했다. 일방적으로 단협해지 통고를 한 회사는 지난해 내내 퇴로 없는 강공책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12월5일 타결된 단체협약에서 임금이 동결되었고, 노조 상근자도 축소되었다. 회사의 일방 승리로 끝났다.



배씨, 사측 강공 탓에 사중고 겪어



일진일퇴를 거듭한 노사 갈등은 자존심 대결 측면이 강했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지난해 파업은 노사 모두 기 싸움이었다”라고 말했다. 회사측도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공기업에서 굳어진 노동조합의 강성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이는 박용성 회장의 노사관과 일치한다. 지난해 7월 박회장은 “떼로 몰려와서 떼를 쓰는 것은 떼법이다. 떼를 쓰는 노조에 승복할 수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었다. 노조나 회사나 새 파트너 길들이기 싸움을 벌인 것이다.






분신한 배달호씨는 이런 노사 대결의 한복판에 있었다. 1981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해 노동조합 설립 때부터 활동했던 배씨는, 지난해 교섭위원이었다. 지난해 파업 때도 그는 호루라기를 불며 진두 지휘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다. 그는 파업으로 사중고를 겪었다. 업무방해 혐의로 7월26일 구속되었다가, 9월17일 출소했다. 출소한 뒤에 정직 3개월을 받았고, 12월20일 복직했다. 게다가 월급 50%가 가압류되었고, 5천5백만원짜리 27평 보금자리도 가압류되었다. 재산이 꽁꽁 묶이자, 가족도 허리띠를 졸라맸다. 수험생인 고등학교 3학년 큰딸(19)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둘째딸(17)도 과외를 접었다. 그래서인지 분신하기 이틀 전 배달호씨는 만취한 채 들어가 딸들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미안하다.” 배씨의 부인 황길영씨(42)는 1월10일 기자와 만나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두산이다”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그의 죽음을 ‘신 노동 탄압이 부른 타살’이라고 규정한다. 가압류라는 사슬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파업 노동자에게 부과된 손해배상 가압류 총액은 1천3백억원에 달한다.



가압류 소송은 법원도 쉽게 받아들인다. 사측은 이를 악용해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월급뿐 아니라 퇴직금과 노동조합비에 대해 가압류 소송을 건다. 일단 걸고 보자는 심산이다. 이는 파업에 따른 손실을 실제로 보상받는다는 측면보다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압박용 카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쪽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이다. 가압류를 풀기 위해서는 정식 재판을 해야 하는데, 정식 재판은 회사가 본안 소송을 내야 시작된다. 회사는 차일피일 본안 소송을 미루며 시간 끌기로 일관한다. 또한 가압류를 취하할 때도 회사측은 각서를 요구한다. 분신한 배달호씨도 회사로부터 노조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받았다. 민주노총은 이번 기회에 노조 압박용 가압류 소송을 까다롭게 하는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배씨 죽음에 회사측은 당혹해 한다. 박용성 회장은 말을 아꼈다. e메일을 통해 입장 표명을 요구하자, 박회장은 답변을 두산중공업 김상갑 사장에게 돌렸다. 두산중공업 김상갑 사장은 “새로운 노사 관계로 출발하려던 차에 이번 사태가 발생해 유감이다. 가압류 해결을 위해 이미 노사 협상이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가압류 부분은 전향적으로 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회사측은 해고자 복직이나 고소 고발 취하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법과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분신 사건 이후 두산중공업 노사의 샅바 싸움이 다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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