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강도 핵실험'은 미국의 희망사항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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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외신 ‘호들갑’…‘10월 핵실험설’ 맞물려 엉뚱하게 증폭
북한 량강도에서 발생한 의문의 폭발 사고는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외부 세계의 대북 인식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일부 외신이나 국내 언론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드러낸 의식은 바로 북한은 ‘상식 바깥의 별종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9월13일 현재 이번 사고의 진상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된 것이 없다. 다만 영국 BBC 방송 인터넷판이 백남순 북한 외무상의 말이라며 이번 폭발이 수력발전소 발전을 위해 산악지역을 폭파해 일어났다고 보도한 것이 그나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9월12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밝힌 견해나 한국 정부의 판단 등을 종합해볼 때, 이번 사건은 초기에 일부 외신 등이 호들갑을 떨었던 ‘핵실험설’과는 무관한 것 같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이번 폭발 사고에 대해 내린 잠정적 결론은 핵실험은커녕 단순 ‘산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지난 9월12일 ABC 방송에 출연한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 역시 ‘핵 관련 사건이었다는 징후는 없다’고 부인했다.

한국 정부의 인식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부 소식통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확실하게 파악한 것은 량강도 지역에서 사고가 일어나 땅의 흔들림이 있었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정도”이다.

국내의 북한 전문가는 이런 정황을 고려해 대략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즉 사고 발생 지역인 량강도 김형직군 내 일부 군부대에서 정권 창립일인 9·9절 행사를 준비하다가 실수로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그것이 산불로 옮겨 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 핵폭발 징후로 의심한 ‘버섯구름’이 사실은 산불 연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어느 모로 보나 핵폭발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왜 이같은 오해가 빚어진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얼마 전부터 워싱턴발로 유포되기 시작한 하나의 ‘가설’이 그 원인이다. 북한이 미국 대선 전인 10월께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얼마 전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어디까지나 미국 정계 인사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워싱턴의 핵실험설에는 핵실험의 주체인 북한의 동향이나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순한 가설에 불과했던 이 관측이 량강도 폭발 사고를 접하면서 마치 현실인 양 부푼 것이다.

긴장 국면 조성하려는 미국의 의도 반영

문제는 이같은 단순 가설이 현실로 둔갑하는 과정에 바로 북한에 대한 편견이 깊게 드리워 있다는 점이다. ‘우리’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도 북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북한이 10월에 핵실험을 할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중국과 국경을 접한 지역에서, 그것도 방사능 낙진 피해가 뻔한 지상 핵폭발 실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이번 소동의 원인을 제공한 ‘10월 핵실험설’에 대해서는 의심이나 회의를 할 겨를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핵실험설 자체를 엄밀히 바라보면 그것이 북한의 의도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일부 세력의 ‘희망 사항’인 측면이 더욱 강하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 항상 대선 기간에 외부 세계의 누군가와 긴장 국면을 전개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측 의도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아무 소득도 없이 핵실험과 같은 모험을 감행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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