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스러워 코드가 안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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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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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이 낳은 유행어와 신조어/로드맵·부시즘 등도 화제
유행어와 신조어는 그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언어의 거울’이다. 노무현 정권 100일 동안에는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많은 유행어와 신조어가 생겨났다. ‘말잔치’가 너무 화려하다 보니 어디를 가든 대통령의 ‘말’을 화제 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도 현정권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노정권 100일을 특징짓는 최대 유행어는 ‘~스럽다’이다. 퍼뜩 떠오르는 것만 꼽아보아도 ‘검사스럽다’ ‘부시스럽다’ ‘놈현스럽다’ 등 서너 가지가 넘는다. ‘~스럽다’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 대선 직후부터이다. 대선 투표 전 날 전격적으로 공조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를 빗대 친구 사이에 약속을 깨면 ‘몽준스럽다’는 말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졌다.

하지만 ‘~스럽다’가 본격적인 유행어로 등장한 것은 지난 3월9일, 노대통령이 평검사들과 가졌던 ‘검사와의 대화’ 이후였다. 토론이 생중계된 뒤 네티즌을 중심으로 ‘검사스럽다’는 말이 급속하게 퍼졌다. 대통령을 피의자 다루듯 하고 자기들 주장만 되풀이하는 검사들을 지켜본 네티즌들은 ‘검사스럽다’의 뜻을 ‘안하무인이며 논리도 없이 자기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라고 풀이했다.이후 ‘~스럽다’는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꼬는 용어로 유명세를 타더니 급기야 ‘놈현스럽다’로 이어져 노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했다. 노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에 지지를 표명하고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이 계기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상식과 원칙을 말하고 실제로 실천하기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것’ ‘자기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것’ 등이 ‘놈현스럽다’는 의미로 쓰였다. 최근에는 ‘남의 소리는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 ‘무현스럽다’는 용어까지 나왔다.

노정권에서 ‘~스럽다’에 못지 않은 인기를 얻은 유행어는 ‘코드’이다. 사전적인 의미는 컴퓨터 등에서 정보를 나타내기 위한 기호 체계 또는 악기의 현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코드’는 ‘정서적 공감대’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청와대 인사들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코드가 맞느냐’는 잣대가 현정권 인사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한 공기업 고위 인사는 사석에서 ‘현정권의 코드가 나와 맞는지를 따지지 말고 내 코드를 현정권에 맞추라’며 나름의 코드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비전과 단계적 이행 방안이 담긴 청사진이나 이정표라는 개념인 ‘로드맵’도 현정권 들어 널리 쓰인 단어이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 회의에서는 ‘로드맵을 만들라’ ‘로드맵을 작성해 보고하겠다’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덩달아 언론도 ‘포괄적 북한 핵 로드맵’ ‘중동 평화 로드맵’ 하는 식으로 이 용어를 많이 썼다.

이밖에 ‘맞습니다 맞고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잡초 정치인을 제거해 달라’는 노대통령의 말도 세간에 화제어가 되었다. 좌충우돌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빗댄 ‘노영삼’,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의미의 ‘부시즘’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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