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급전직하 “잘하고 있다” 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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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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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노무현 정권 100일’ 여론조사
“첫해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 어느 당이 다수 당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대접해주는 것은 딱 1년뿐이다.” 미국의 36대 대통령을 지낸 린든 B. 존슨이 남긴 말이다. 4년 중임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대통령 당선자가 국회와 언론, 이익집단 등의 자발적 협조를 얻는 기간은 1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 중에서도 취임 후 100일이 갖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 허니문 기간의 성패는 물론이고 나머지 임기의 성격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닉슨에서 클린턴까지 대통령 네 사람을 보좌했던 데이비드 거겐은 역대 대통령의 첫 100일을 연구한 후 이렇게 결론지었다. 첫 100일은 대통령이 집권 기간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각인시킬 수 있는 기간인 동시에, 대통령들이 가장 중요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병든 사회와 경제를 치료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는 ‘닥터 뉴딜’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제시한 데 반해,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면시키는 데 집착해 일찌감치 자질 논쟁에 휘말렸다는 얘기다.

미국이 이럴진대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취임 후 100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렇다면 6월4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7.3%만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당선자 시절이던 1월23일 조사에서 81.8% 지지를 얻었는데, 그 사이 20% 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5월26일자 <한겨레>는 대통령 지지도가 심지어 57.3%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각각 90%대와 80%대 지지율을 기록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야박해진 것은 최근의 혼란한 정국 상황이 반영된 탓이다. 노대통령은 북한 핵과 한·미 공조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의 긴장, 취임식과 함께 돌출된 친인척 비리, 최측근들의 비리 의혹, 화물연대 파업과 NEIS 파동 같은 각종 사회 갈등에 직면해 매우 어려운 100일을 보냈다. 거기에 대통령의 거친 언행과 청와대 시스템의 허술함까지 겹치면서 최근 각종 언론을 통해 조명되는 노무현 정권은 벌써 ‘레임 덕’에 접어든 것 같은 모양새다. 오죽하면 백일상도 안 받은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는 얘기가 나왔을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노대통령을 힘들게 했던 것은 노대통령 본인도 인정했듯이 ‘지지 세력과의 충돌’이다. 대북 송금 특검과 이라크 파병, 방미 외교에서 드러난 노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은 기존 지지층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반면, 보수 세력으로부터는 환영을 받았다. 게다가 전교조와 한총련에 대해 청와대가 강경하게 대응할 뜻을 비치면서 기존 지지층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런 노대통령의 ‘야릇한 행보’는 지지층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바로 지역·연령 별로 노대통령 지지층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지역 별로 분석하면, 충청권(79.2%)이 가장 높고, 부산·경남(75.2%)이 두 번째이며, 강원(75.0%)과 호남(73.5%), 대구·경북(68.5%)이 그 뒤를 잇는다. 늘 1위를 달리던 호남 지역의 지지도가 4위로 내려앉은 반면, 부산·경남은 물론 대구·경북에서도 평균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것이 이채롭다. 반면, 수도권에서 노대통령 지지율은 서울 53.0%, 인천·경기 66.1%로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연령대별 지지율 변화도 상징적이다. 20대의 지지율이 78.1%로 가장 높고, 50대와 60대가 각각 60%, 74.8%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40대의 지지율은 58.1%로 가장 낮다. ‘호남과 수도권, 40대 지지율 하락, 50~60대 영남 지지세 상승’으로 요약되는 노대통령 지지층의 변화는 세부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노대통령이 지난 100일간 가장 잘한 분야를 묻는 질문(중복 응답)에 1위가 외교, 2위가 인사, 3위가 대북 정책으로 나왔다. 기존 지지층에서는 ‘굴욕 외교를 하고 왔다’ ‘호남 소외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 ‘북한 핵과 대북 경협을 연계하는 것은 햇볕정책을 훼손하는 것이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정책들이 일제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해석하기 힘든’ 결과는 모두 보수층의 우호적 평가에서 비롯된다. ‘외교’를 잘했다고 꼽은 응답자는 인천·경기(44.6%)와 강원(31.3%), 부산·경남(24.8%) 쪽이 호남(18.6%) 보다 훨씬 많았고, 심지어 대선 때 노대통령을 찍은 사람(26.9%)보다 이회창 후보를 찍은 사람(28.5%) 중에서 더 많았다. ‘인사’가 잘된 정책이라고 꼽은 응답자는 부산·경남(35.8%)이 가장 많았고, ‘대북 정책’이 잘 되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인천·경기(41%)와 강원(18.8%), 부산·경남(18.8%)에 상대적으로 많아 최하위를 기록한 호남(8%)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난 100일간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핵심 쟁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변절자’라는 오명을 얻게 된 이라크 파병안 찬성과 방미 외교, 대북 송금 특검제 수용에 대해서는 잘했다는 응답자가 오히려 잘못했다는 응답자보다 2~3배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반해 노대통령이 개혁 색채를 드러낸 오보와의 전쟁과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한총련 합법화 추진 등은 긍정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평가를 약간 앞지르거나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와의 대화만이 ‘잘했다’ 66.8%, ‘잘못했다’25.3%로 격차가 다소 벌어졌을 따름이다.

특히 ‘이라크 전쟁 파병과 방미 외교가 실용주의 외교라는 참여 정부의 주장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는 ‘공감한다’가 79.0%로, ‘공감하지 않는다’ 18.9%를 압도했다. 개혁 세력이 환영하는 정책은 전체 평가가 낮고, 보수 세력이 환영하는 정책은 전체 평가가 높게 나타나는 독특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지층 변화 흐름에 대해 청와대 안팎의 평가는 뚜렷하게 갈린다.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내용은 그리 나쁘지 않다”라고 낙관했다. 40~50대와 영남에서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은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안정감이 퍼지면서 결국 지지층 평준화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여론조사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가 지난 100일 사이에 변했느냐’고 물어본 결과, 지지하지 않다가 지지하는 쪽으로 변한 사람(17.9%)이, 지지했다가 등을 돌렸다는 사람(14.6%)보다 3.3% 포인트 더 많았다. 청와대 참모는, 청와대의 최근 조사에서는 그 격차가 6.3% 포인트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전체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기존 지지자들이 일시적으로 실망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치 개혁과 사회 개혁 같은 이슈들이 불거지면 기존 지지층은 다시 뭉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토끼를 잡고 나면 집 나간 토끼도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 또다시 보수 세력이 떨어져 나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보수 세력도 공감하는 개혁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한 예로 노대통령이 정치 개혁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잡초론’의 경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부정적 반응 일색이었지만, 청와대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72%가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들은 이런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 매우 안이하다고 비판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지층 변화가 실제 표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충청도 사람들은 행정 수도 이전이라는 잇속 때문에, 부산·경남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 새끼인데’ 하는 동정심 때문에 노대통령에게 우호적일 뿐, 막상 총선이 닥치면 대부분 당파성에 더 크게 좌우되리라는 것이다.

다른 선거 전문가는 수도권의 지지율 하락세에 주목하라고 지적했다. 노무현의 기존 지지층이 분열하면 가장 타격을 입는 곳이 수도권이고, 영남에서는 이를 만회할 만큼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이대로 갈 경우 노대통령은 내년 총선 직후 끽소리 못하고 한나라당에 총리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여론조사는 노대통령 지지층의 변화가 신당에 대한 지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우선 응답자 가운데 65.2%는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 창당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당의 성격을 ‘노무현 신당’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년 총선에서 노무현 신당이 창당될 경우 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자는 17.0%에 불과했다. 한나라당 20.7%, 민주당 19.7%에 뒤지는 수치이다. 무응답이 40% 가까이 되지만 민주당이 분열될 경우 지지층 역시 갈라지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민주당 지지층의 41.7%는 그대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22.3%만이 신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현재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이 38.6%로 가장 높고, 한나라당이 23.3%, 민주노동당 4.2%, 개혁정당 2.4% 순이다.

청와대는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경제’와 ‘국가 기강 확립’을 새 화두로 던질 예정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제를 너무 소홀히 한다’ ‘국가 기강을 바로잡아 달라’는 여론이 비등해서다.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그동안 가장 잘못한 정책 1위로 ‘경제’가 꼽혔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방미 때 투자 유치와 관련해 공개하지 않은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7~8월께면 차차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가 안정되고 투자 유치 계획들이 하나 둘 발표되면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리라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똑같이 혼란스러운 100일을 보낸 후 화려하게 재기한 클린턴 대통령처럼 될지, 아니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전망은 여전히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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