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뛰어드는 연예인의 이모저모
  • 김은남 ()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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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 사람도 출마하나”
탤런트 이정길·류시원·박광현,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 이름 하 일), 지리산 청학동 훈장 김봉곤….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최근 범개혁 세력이 추진하는 신당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이들은 지난 9월7일 결성된 국민통합개혁신당추진위원회에 창당 추진위원으로 합류했다.

이들의 신당행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연예인들은 선거 유세에 동원되는 눈요깃거리였다. 그러나 지난 대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2002년은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 원년이라고 할 만했다. 특정 후보 지지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연예인 서포터스 조직이 만들어지고, 문성근·명계남·김흥국 씨처럼 선거본부의 핵심 참모를 맡는 연예인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가 일상화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이른 듯하다. 아직은 개인의 소신보다 특정 정치인과의 친분 때문에 신당에 합류한 사람이 적지 않다. 영화 <서울 무지개>에서 절대 권력자에게 유린당하는 여배우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겸 화가 강리나씨,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 및 텔레비전 사극 <명성황후>의 OST 음반 등을 기획하면서 ‘히트곡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은 작곡가 이경섭씨는 각각 이부영 의원, 박명광 신당연대 공동대표(전 경희대 부총장)와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다.

이 중 이경섭씨는 청춘 스타 류시원·박광현 씨를 신당에 끌어들였다. 고교 시절부터 박명광 대표를 정신적 대부로 생각해 왔다는 이씨는 정치에 큰 관심은 없다면서도 박대표의 판단을 무조건 믿고 존중하는 터여서 친한 후배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떠맡았다고 말했다.

‘경상도 역적’ 김봉곤 “생활 정치인 되겠다”

이들과 달리 원칙과 소신에 따라 신당행을 결정한 사람도 있다. 청학동 훈장 김봉곤씨가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개혁당에 입당한 김씨는 경남 하동에서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바람에 ‘경상도의 역적’이라는 비난을 받곤 했다. 서당 수업을 예약했다가 취소한 영남의 개인·단체만도 여럿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벼슬을 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던 공자처럼 ‘생활 정치인’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제 변호사 출신으로서 김봉곤씨와 의형제를 맺고 있는 로버트 할리 씨 또한 귀화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정치 개혁에 기여하고 싶어 신당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소신파이다.

연예인이 신념을 갖고 정치 활동을 펴기에는 아직 제약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군사 정권 시절처럼 야당 정치인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지만 ‘혹시 딴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이 일단은 부담이 된다. 본래 신당 지지 선언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던 인기 탤런트 ㅇ씨, 톱가수 ㅈ씨가 막판에 주저한 것 또한 이같은 이미지 손상을 염려해서였다고 한다. 노사모에서 맹활약한 명계남씨는 “언론 개혁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언론사 사장 되려고 그러느냐’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정치 개혁 운동에 나서니까 ‘출마하려고 저런다’는 식으로 일단 곡해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을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연예인을 적극 끌어들이겠다는 것이 신당측 구상이다. 독자 정치 세력화를 구상하는 시민단체 또한 탤런트 유인촌씨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신당에 참여하는 탤런트 이정길씨는 “연예인이 정치권 들러리를 서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연예인도 대중 문화인으로서 정체성과 전문성을 갖고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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