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강원도의 힘’ 작용했나
  • 나권일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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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이엠아이티 급성장에 의혹 쏠려…일부 386 측근들과 유착설 돌아
'최도술 쇼크’로 노대통령 측근들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노대통령 386 측근의 리더 격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38)의 추락이 두드러진다. 지난 10월17일, 통합신당 의원 총회장에서 천정배 의원은 “청와대 보좌진에 국정 경험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결여되고 폐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핵심 요직에 있다”라며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경질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지난 10월11일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이실장은 10월18일 사표를 냈다. 이실장은 공직에 들어선 지 1년도 버티지 못하게 생겼다.

천정배 의원이 ‘정보와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이라고 지목한 이실장에게는 여러 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고 따라다녔다. 최근에는 강원도가 진원지인 새로운 의혹이 이실장을 비롯한 노대통령 측근들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강남 벤처 업계 주변에서 숙성된 뒤 여의도로 번진 이 의혹은 강원도 출신 청와대 인사들을 흔들어댈 공산이 크다.

“이희원 대표와 정만호 비서관 만남 목격했다”

이른바 ‘강원도의 힘’이라고 냉소적으로 불리는 의혹의 전말은 이렇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벤처 업계에서 (주)아이엠아이티(대표이사 이희원)가 세칭 ‘잘 나간다’는 얘기가 돌았다. 뛰어난 기술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세가 성장한 배경에는 청와대 내에 든든한 강원도 출신 우군이 있다는 것. 지난 5월, 정보통신부 출연 기관인 정보통신연구진흥원(원장 김태현)이 이 회사를 정보화촉진기금 20억원을 지원할 기업으로 선정했는데, 여기에는 청와대 내 강원도 인맥의 도움이 컸으리라는 것이 의혹의 골자이다. (주)아이엠아이티는 시스템통합(SI)과 전자상거래 업체이다. 2001년 코스닥에 상장되었고, 지난해 매출 5백84억원을 기록했다. 강원벤처포럼 회장인 이희원 대표이사는 대표적인 강원도(홍천) 출신 벤처 기업인이다.

의문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목격담도 있다. 강원도 사정에 밝은 한 언론계 인사는 “이희원 대표가 청와대 인사와 사석에서 몇 차례 어울린 것은 사실이다. 이대표와 정만호 의전비서관의 만남에는 강원도 지역 언론인 ㄱ씨도 함께했다”라고 말했다. 이들 세 사람이 모두 1958년생 개띠(45)이기 때문에 벤처 기업인 친분설이 그럴듯하게 퍼졌다는 것이다. 외부 인사와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광재 실장과 달리 시원시원한 성격인 정비서관은 동향 인사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의전비서관으로 옮기기 전 정책상황비서관일 때만 해도 내년 총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등 정보기관도 이같은 강원도 사람들의 잦은 회합에 대해 경위를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청와대비서실 내 강원도 출신 고위 인사로는 권오규 정책수석(강릉)·정만호 의전비서관(양구)·이광재 실장(평창)이 꼽힌다.

경영 상태 안 좋은데도 융자 받고 외자 유치

하지만 이같은 의혹에 대해 (주)아이엠아이티 이희원 사장은 ‘100% 오해’이고 ‘사실 무근’이라고 펄쩍 뛰었다. 이희원 사장은 “내 동생 이름이 ‘이만재’인데, 주주 명단에 등재된 이만재가 ‘이광재의 동생’이라고 잘못된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허황된 유언비어 때문에 한 주당 2천원 하던 주가가 5백원대로 떨어졌고, 금융기관이나 협력 업체가 우리 회사를 기피해 큰 피해를 봤다”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또 “이실장과는 정말 일면식도 없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을 알고 있으니 수사기관에 조사를 요청해 처벌받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그러나 “정만호 비서관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단 한번 만났다”라며 정비서관과 안면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이광재 실장과 정만호 의전비서관은 기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소문의 당사자는 펄쩍 뛰지만 의문은 있다. (주)아이엠아이티는 지난 5월, 정보통신연구진흥원으로부터 정보화촉진기금 지원 대상 기술 업체로 선정되어 정보 통신 회사로서는 드물게 20억원 융자를 받을 길이 열렸다. 군사용 지도를 입체적인 전자상황도로 전환하는 국방정보화 사업을 정보통신진흥연구원이 융자 사업으로 인정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주)아이엠아이티는 경영 사정 악화로 금융권에 제출할 담보 물건이 부족해 정작 5개월이 지난 10월까지도 융자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아이엠아이티에는 올 하반기 내내 좋은 일만 잇따랐다. (주)아이엠아이티는 6월30일 무보증 해외공모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외국 자본 35억원을 유치했다. 또 지난 7월, 경찰청 주파수 공용통신(TRS) 시스템 사업을 따낸 (주)KT에 디지털 단말기와 딸린 장비를 납품하는 사업자로 선정되어 74억원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지난 10월10일에는 19억8천만원 증자에 성공해 자본금을 55억원에서 74억원으로 늘렸다. 벤처 업계 일각에서는 (주)아이엠아이티가 경영 상태가 좋지 못한데도 정부 지원금 융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고, 대기업체 납품과 증자에까지 성공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고 본다. 강원도 출신 정·관계 인사들의 ‘밀어주기’ 덕분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대전에 있는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융자사업팀 관계자는 “정보화촉진기금 지원은 회사 자금력과 관계없이 기술력만 평가한다”라며, 평가 절차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주)아이엠아이티 홍보팀 관계자도 “자금 사정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정부지원금 융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벤처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 투자자들을 유치하고도 정작 정부 지원금을 포기한 배경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다. (주)아이엠아이티의 경영 상태가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서울지검이 수사한 결과, 실제로 제품을 납품하지 않았는데도 장부에 40억원 매출을 기록해 ‘가공 매출’ 의혹을 샀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주)아이엠아이티 의혹을 최근의 정국과 연계하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원도 지역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이 고민이다.

노대통령 측근들과 관련된 잇단 의혹에는 매번 총선 출마설이 따라 다닌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결국 내년 총선 때문이 아니겠느냐. 신당을 만들고 총선에 나가기 위해서 뭉칫돈이 필요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0월16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노대통령 386 측근도 부산 기업체에서 돈을 받았다”라고 말한 뒤, 부산 현지에서는 문제의 386 측근이 내년에 총선에 출마하려는 사람일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았다고 한다.

측근 문제가 잇달아 터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좌불안석이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사퇴할 때, 최씨가 총선에 출마하려고 그만두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17일 연합뉴스는 ‘최도술, 대통령이 출마 허락’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까지 내보냈다. 당시 최비서관은 “대통령이 과거 해양수산부장관 할 때 ‘내 지역구를 물려받으라’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전파하고 의정 생활로 뒷받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최도술 전 비서관은 SK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청와대가 최씨 비리를 덮기 위해 '총선 출마'라는 쇼를 했다”라고 비난했다. 민정수석실이 본연의 기능인 비리 사전 차단에는 소홀하고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부산파 측근들의 잘못을 덮는 데만 급급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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