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첫 국감 결산/출석은 ''개근상'' 성적은 ''중하위권''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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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률 96.7%로 예년보다 높아… 초선들 패기 부족, 이슈 장악 못해
16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11월7일 20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종료되었다. 16개 상임위에서 3백57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국감은 의원들의 서류 제출 요구 건수가 6만4천8백88건, 증인 출석 요구가 2천5백68명에 이르렀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의원 출석률이 96.7%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지난해의 90.4%, 15대 국회 때의 평균 84.2%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다. 밤 12시를 넘어서 회의가 끝난 것이 11회로 지난해의 7회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11월2일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감 때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의 ‘실명 폭로’ 파문으로 국감이 파행한 것을 빼면 이번 국감 일정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국감 첫날인 10월19일 경기경찰청 감사 때 경기경찰청장의 무성의한 답변에 불만을 품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했고, 10월24일에는 문광위 국감에서 박지원·박세직 씨의 증인 출석 문제를 놓고 여야가 설전을 벌이면서 4시간 30분 동안 감사가 지연되는 등 퇴장과 설전으로 감사가 지연된 경우는 14건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의 9건에 비해 늘어난 수치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파행으로 인한 단독 국감이 8회나 있었으나 올해는 한 차례도 없었다.

정기국회 개원 초만 하더라도 국회 파행으로 국감 실시 여부마저 불투명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국감이 일단 지표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국감시민연대의 활동이 출석률을 높이고 파행을 막는 데 큰 힘이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올해 국감이 비교적 순탄하게 치러진 것은 무엇보다도 예전에 비해 대형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맥 빠진 국감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 의원 보좌관은 “정권이 바뀐 뒤 여당 의원들은 독이 빠졌고, 야당 의원들은 공격거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맥 빠진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는 반응도 많다. 과거 여러 차례 대형 폭로를 하면서 ‘국감 스타’로 떠올랐던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국감 분위기가 정돈되어 가고 있다. 송곳 발언이 줄고 정책이나 대안 중심으로 질의 내용이 바뀌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4년 만에 국감을 다시 치러본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도 14대 때와 비교해서 훨씬 ‘정책 국감’에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13, 14대 국감 때는 대형 폭로가 많았다. 그러나 문민 정부 이후 폭로성 내용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피감 기관의 문제점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고, 국감 시스템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국감시민연대 양세진 공동사무국장도 “의원들의 사전 준비와 참여가 과거에 비해 성실해졌다. 아직은 과도적이지만 정책 국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의원들이 사안 별로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에 비해 내용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았다. 건설교통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인천국제공항 부실 의혹에 대한 공동자료집을 준비해 공동 질의를 했다.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사학 재단의 부정을 파헤치는 자료집을 공동으로 냈다. 보건복지위 소속 민주당 최영희·이종걸 의원은 공동 대처한 식품의약품안정청 감사에서 생물 동등성 실험을 거치지 않고 비교 용출 시험만으로 대체 조제 리스트를 만든 식약청의 잘못을 집중 추궁해서, 청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감시민연대가 뽑은 국감 우수 의원의 60%가 초선이었던 데 비하면 올해 초선들의 ‘패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이다. 10월29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에 대한 중간 결산을 발표했는데, 두 당 모두 ‘초선들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감 기간에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열렸고, 기업 퇴출과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 등 민감한 뉴스거리가 양산되어 국감이 상대적으로 언론의 눈길을 끌지 못한 점도 국감장의 분위기 침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 의원은 “정말 중요한 정책 대안은 기사화하지 않고 자극적인 것만 기사화한다. 이런 것 때문에 국감의 맛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의원이 많다”라고 전했다.

이번 국감은 전반적으로 나아졌지만, 과거부터 지적되어온 문제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국감시민연대 양세진 공동사무국장은 “국감을 정치 공세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구태 정치의 모습들이 사라지지 않았고, 저질 시비도 계속되었다”라고 지적했다. 11월2일 법사위에서 있었던 이주영 의원 발언이 대표적인 정치 공세적 발언이라면, 10월24일 건설교통위에서 민주당 송영진 의원과 한나라당 권기술 의원이 막말을 해가면서 멱살잡이 일보 직전까지 간 일은 저질 국감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언론 이용하기를 겨냥한 과시형 질의도 여전했다. 농림해양수산위에서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소고기를 들고 나와 장관에게 한우 소고기를 골라 보라고 요구한 뒤 장관이 맞추지 못하자 이를 질책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 민주당 김희선 의원은 국감장에서 인터넷 포르노물을 상영하기도 했다.

20일 만에 수백 개 피감 기관을 내실 있게 감사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무위의 피감 기관은 상임위 중 가장 많은 59개. 정무위는 이를 위해 거의 매일 세 군데씩 감사하면서 강행군했다. 정무위의 한 의원은 “15분씩 돌아가며 질의하는 데만 4시간 45분이 소요된다. 이렇게 하루 두세 군데씩 감사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 답변은 형식적으로 듣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모든 의원이 피감 기관을 다 감사하기보다는 위원회 별로 소위원회를 활성화해 전문적으로 국감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문화관광위의 경우 위원들을 문화정책, 체육·청소년, 관광 등 몇개 소위원회로 나눠 전문적인 국정감사가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는 데 많은 의원이 동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법을 개정해 일문일답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를 활용한 의원은 소수였다. 대부분 일괄 질의와 일괄 답변으로 일관했고, 중복 질의도 계속되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임종석 의원은 시간 제약 때문에 일문일답을 하기가 벅찼다면서, 현재와 같은 국감 진행은 내실 있는 정책 국감이 되기에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연중 국회가 가능한 만큼 피감 기관에 대한 감시 감독이 상시 이루어지도록 하고, 국감은 정책 중심으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 처음 국감을 치러 본 임의원의 소감이다.

국감시민연대는 11월9일 기자회견에서 올해의 국감 우수 의원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우수 의원으로는 보건복지위 김홍신(한나라당), 법사위 조순형(민주당), 재경위 정세균(민주당)·이완구(자민련), 통일외교통상위 김성호(민주당), 행자위 추미애(민주당), 교육위 임종석(민주당)·이재오(한나라당), 문화관광위 이미경(민주당)·정병국(한나라당), 농림해양수산위 권오을(한나라당), 환경노동위 한명숙(민주당)·전재희(한나라당) 의원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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