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소장파 반란의 파장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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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소장파 13인, 당 지도부에 직격탄… 경색 정국에 물꼬 틀 듯
그렇게 소쩍새가 울어대더니 결국 국화꽃을 피우긴 피웠구만…”

민주당 소장파 의원 13명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정국 운영 방식에 직격탄을 퍼부은 지난 9월15일, 여권의 한 개혁파 의원은 이 ‘반란’을 서정주 시인의 시구에 빗댔다. 소장파가 집단 행동을 할 듯 할 듯하다가도 계속 미루더니 이제야 뭔가 보여 주었다는 의미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전날에도 여야 소장파 의원 20여 명은 대결로만 치닫는 여야 지도부를 성토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려다 양당 지도부의 압력에 굴복해 정치권 안팎을 실망시킨 터였다.

곽치영 김성호 김태홍 문석호 박인상 송영길 이재정 이호웅 장성민 정범구 정장선 최용규 추미애. 초·재선 13명이 쏟아낸 지도부 비판은 태풍 ‘사오마이’만큼이나 메가톤급이었다. 한빛은행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서라도 의혹을 해소해야 하고, 의약분업은 전면 재검토해야 하며, 정국 대처 능력이 없는 당 지도부는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식의 충격적인 주문이 쏟아졌다. 이는 당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은 물론이고, 바로 전날 ‘한빛은행 사건에 특검제는 절대 불가’라고 못박은 김대통령을 대놓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이재정·정범구 의원이 서영훈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특검제 요구나 지도부 사퇴는 13인의 통일된 의견이 아닌 개인 의견’이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간 당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 오던 정치인들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말이 공개된 자리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1980년 공화당의 박찬종·오유방 의원이 JP를 상대로 제기했던 ‘정풍운동’ 이후 지도부에 반기를 든 최대 사건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철없는 짓’이라며 몹시 불쾌해 하고 있다. 비판도 때가 있지 여야 대치 상황에서 총부리를 안으로 겨누는 것은 자해 행위라는 이야기다. 당의 한 고위 인사는 “불만이 있으면 의원총회나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제기할 것이지 왜 공개 비판이냐”라며 절차 문제를 지적했다. 반란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광주 술판 사건으로 이미지를 훼손한 몇몇 의원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주도한 한탕주의식 언론 플레이’라고 비난했다. 정말 이대로는 안된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본인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선거비용 실사 문제는 왜 거론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장파의 반란은 ‘잘한 일’이라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한 정치학자는 “정치 행동을 할 때마다 앞뒤 다 재고 위아래 눈치 다 보면 그게 중진급이지 어디 초·재선급이겠느냐. 형식이 다소 거칠더라도 내용은 공감을 살 만한 행동이다”라고 이들을 옹호했다.

소장파의 집단 행동으로 충격을 받은 여권 상층부에서는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대표는 휴일인 9월17일 모임에 참석했던 의원들을 점심에 초대해 “대화 부족을 반성하며 앞으로 각급 회의를 활성화하겠다”라고 달랬다. 한빛은행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수용도 검토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9월16일 최고위원 낙선자 오찬에서 “국회가 정상화되어야 국정감사든 국정조사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해 국정조사도 수용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청와대는 또 의약분업 파동을 조기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의료계가 요구하는 임의분업 수용이나 한시적 시행 유보안 등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당 3역 중 일부를 교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소장파의 충격 요법은 경색 정국의 물꼬를 트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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