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386 후보들이 얻은 것과 잃은 것
  • 금종민 기자 ()
  • 승인 2000.05.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부분 3천만~5천만 원 빚 떠안아… “겸손만이 재기의 발판”
지난 4월25일 저녁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여야의 386 후보들이 모여 패전 무용담을 나누었다. 전후 세대의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결성된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총무 이정우 변호사)이 주최한 이 날 모임에서는 회원인 허인회·우상호·이인영(이상 민주당) 씨와 정태근·박종운(이상 한나라당) 씨들이 참석했다. 386 후보들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때문인지 낙선은 했지만 씩씩한 모습이었다. 당적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번 선거를 평가하는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명도가 낮은 데다가 뒤늦게 서울 성북 갑에 한나라당 후보로 결정되어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민주당 유재건 의원과 마지막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정태근씨는 “개인적인 역량보다도 정치권 교체를 바라는 민심의 큰 흐름이 선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정씨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불리하게 나왔는데도 선거 3일 전에는 당선을 확신했을 정도로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가 피부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젊은층 투표율 낮아 안타깝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낮은 투표율. 특히 자신들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20, 30대 젊은층의 투표율이 낮았던 것이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한 후보는 선거 당일에도 승리를 확신했으나 오후 4시께 투표장에 가서 50%에도 못미치는 투표율을 확인하고는 마음을 접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허인회·우상호·이인영(민주당)·고진화·오경훈(한나라당) 씨등 이번에 낙선한 386 후보 대부분은 적게는 11표에서 많아야 2천∼3천 표 차이로 떨어져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았다면 여러 곳에서 승패가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에 좀더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도 나왔다. 여야로부터 공천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했던 이정우 변호사는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의 대립 구도 외에 새것과 낡은것의 대립 구도가 뚜렷하게 있었다. 여야의 젊은 후보들이 힘을 합쳐 새것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기대에 화답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지나간 선거에 대한 평가는 편하게 하지만 이들 낙선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심적·현실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선거 직후 청와대 낙선자 위로 모임에 참석해 DJ에게 큰 절을 올려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허인회씨는 “솔직히 11표 차이로 진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대통령에게 의지하고 싶기도 해 감정이 복받쳤다”라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 후보 역시 낙선을 확인한 순간 왈칵 눈물이 치솟았다고 실토했다.

당선자와 낙선자의 처지가 천양지차인 현실에서 선거 뒷수습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선거 과정에서 진 빚을 청산하는 것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이들 대부분은 끝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인 탓에 3천만∼5천만 원 정도의 빚을 안고 있다. 낙선 후에는 주위의 지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고민이다.

모두들 4년 후를 기약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사람은 많지 않다. 낙선 일기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는 정태근씨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공약한 사항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이번에 당선된 젊은 후보들과 모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낙선한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내용은 젊은 당선자들과 협력해 실현해 가겠다는 것이다.

낙선 경험이 있는 젊은 당선자들이 낙선 후보들에게 주는 충고는 한마디로 ‘겸손’이다. 15대에 처음 출마해 낙선했다가 이번에 국회 진입에 성공한 한나라당 김영춘 당선자는 “젊은 정치인에게 한 번 낙선은 전화 위복의 기회이다. 무엇보다도 겸손을 몸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라고 충고했다. 지난해 6·3 보궐 선거에서 대표적인 젊은피로 각광받았으나 낙선했던 민주당 송영길 당선자는 지난 10개월을 이렇게 얘기한다. “작년 선거 때는 솔직히 교만했다. 정치를 개혁하려면 송영길을 뽑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고, 그 교만 때문에 졌다. 지난 10개월간 엄청난 시련의 기간이었고 하루도 안 쉬고 뛰면서 성심을 다해 겸손하게 일하겠다는 마음을 수없이 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