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김정길 박지원 한이현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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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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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설 솔솔 새어 나오는‘안팎 곱사등이 신세’ 김정길

청와대와 당의 중개역인 김정길 정무수석이 요즘 안팎 곱사등이 신세다. 국민회의측에서 보면 김수석은 김중권 비서실장·김한길 정책기획수석과 함께 청와대의 신주류 3인에 속한다. 이 때문에 당직자들이 김수석을 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손세일 총무가 “정무수석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쏘아붙인 것이나, 김영배 총재권한대행이 ‘비서의 비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그의 말 실수를 정면 공격한 것은 다 그런 맥락에서다.

그런 김수석이 옷 로비 사건을 거치는 과정에서 김실장을 비롯한 신주류측으로부터도 눈총을 사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라고 변명한 것이 알려지자, 김실장측이 모든 부담을 대통령에게 지우고 자신은 면피하려는 무책임한 언행이라며 발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김수석이 강조하고 있는 ‘YS와의 화해를 통한 민주대연합론’은 TK와의 지역 연합을 우선시하는 김실장측의 견해와 상충한다.

이 때문인지 당과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수석 교체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온다. 복병 만난 ‘실세 장관’ 박지원스크린 쿼터 돌파할 묘수는?

문화관광부는 요즘 ‘실세 장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박지원 장관이 취임한 뒤 그동안 보류되어온 사업들에 숨통이 틔었기 때문이다. 맨 먼저 혜택을 입은 쪽은 체육계다. 태릉 선수촌을 방문한 박장관은 국가 대표 선수들이 3년째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그 자리에서 새 운동복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 내년에 세계 빙상 대회를 열어야 할 빙상 경기장을 예산이 없어 시공조차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곧바로 60억원을 마련해 체육계를 감격케 했다.

박장관은 또 영화·연극 등 문화계를 위한 지원 자금도 상당액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 박장관에게 최근 복병이 나타났다.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영화계가 또다시 들고 일어난 것이다. 스크린 쿼터 축소는 대미 협상 창구인 외교통상부가 여러 차례 시도했던 정책인데, 문광부는 그동안 외통부와 영화인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처신해 왔다. 자금 동원력으로 승승장구하던 박장관이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인 스크린 쿼터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 미아’ 한이헌 YS 후광 업고 부산 출마 모색

15대 국회에서 무소속으로 남아 있던 국회의원 중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신당이 이인제 후보가 낙선해 공중 분해되는 바람에 정치 미아가 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인제 후보를 따라 국민회의에 입당하거나, 대선 이전의 소속 정당으로 복귀하는 등 제 갈 길을 찾았다.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남은 사람이 문민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한이헌 의원. 한의원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복귀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이를 접어둔 채 YS와의 관계를 회복해 그의 후광을 업고 부산에서 출마하는 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문민 정부 시절 이원종 전 정무수석과 함께 청와대 주변에서 ‘쌍핏대’라고 불릴 만큼 강한 개성을 발휘한 인물. 그가 YS의 그늘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정치·경제 분야 핵심 측근들이 모두 돌아오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복귀가 정작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영일, 행운 낳는 ‘변신’ 끝에‘나이 육십에 능참봉’ 되다

초·재선급 의원들이 얼굴 알리기 차원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변인을 3선에 맡아 ‘나이 육십에 능참봉’이라는 농담을 들은 국민회의 이영일 의원. 그는 애초 국토통일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대변인에 걸맞지 않는 3선이라는 ‘무게’도 파격이지만, 대부분 언론인 출신이 맡아온 대변인에 관료 출신 정치인이 임명된 것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통일원 대변인을 지냈고 국민회의 홍보위원장도 경험했으니 대변인 업무와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변인이 된 이후 이의원은 늘 행운을 몰고 다니는 것 같다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의원은 5공 시절, 전두환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데다 민자당 광주시지부장 출신이지만 어렵지 않게 국민회의로 ‘도강’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냉전 시대로 불리던 시절의 통일원 대변인 출신이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는 ‘DJ 햇볕 정책’의 전도사로 변신하기도 했다. 또 15대 국회에는 보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의 사퇴로 무투표 당선한데다, 이제 대변인까지 맡았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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