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연속 현정부에 호남 민심도 부글부글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199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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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심, 고급 옷·파업 유도 파문에 ‘부글부글’… “서민 울리는 정부에 배신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일까.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호남 지역에서도 강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광주에서 하루가 멀다고 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화갑 국민회의 의원이 5·18 관련 단체 간부로부터 인분 세례를 받기도 했다. 또 ‘고급 옷 로비’ 사건의 와중에 김옥현 전남 광양시장의 부인 김모씨가 인사 청탁과 함께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지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고, ‘광주 유권자의 80%가 지역구 의원 교체를 원한다’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되어 광주지역을 온통 들쑤시고 있다(35쪽 상자 기사 참조).

민심의 동요는 광주·전남 지역 시민단체들의 정부 비난 집회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지난 6월11일 광주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검 앞에서는 광주 지역 노동계와 광주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이 연대해 특별검사제 도입과 정부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고검을 항의 방문했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광주 경실련, 광주 YMCA, 광주 YWCA, 광주·전남 환경운동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등 30여 시민·사회 단체를 망라한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김대중 정부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총체적 개혁에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3·30 재·보선 50억원 사용 의혹과 고급 옷 로비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힐 것도 요구했다. 모두 야당인 한나라당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비판이었다.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와 전북시민운동연합도 6월10일 전주지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김대중 정부의 반성을 촉구했다. 전북시민운동연합 최형재 사무처장은 “호남 지역민들은 과거 DJ와 국민회의에 90% 이상의 지지를 보내준 것이 지역주의에 따른 몰표가 아니라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현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호남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의 정부 비판은 앞으로도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광주 경실련은 12일부터 1주일간 광주지검 앞에서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함께 항의 시위를 했고,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도 전국의 노동단체와 공조해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진상 규명과 검찰 개혁을 촉구하고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김대중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보내준 전폭적인 지지에 대해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개혁해 답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것은 ‘민주 성지’ 광주의 역사적인 책무다”라고 강조한다. ‘참을 만큼 참아온’ 호남 지역 서민들의 말 못하는 처지를 시민단체들이라도 나서서 대변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이런 연쇄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견주어 적은 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정찬호 교육·선전부장은 “집회 참여 인원의 많고 적음으로 호남 사람들의 민심을 판단할 일이 아니다. 호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사람들이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고급 옷 로비 사건에서부터 최근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파업 유도’발언 파문에 이르기까지 호남 지역 서민들이 갖는 실망감과 안타까움은 크다. 정부 출범 이후 ‘호남 호황설’ 에 시달리면서 오히려 ‘역차별’을 호소할 정도로 할말 못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광주시 방림동에 사는 윤재천씨(54)는 “호남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어 준 것은 과거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는데, 서민들 처지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통령보다 아랫사람들이 잘못”

택시 운전을 하는 류병량씨(44·광주시 두암동)는 “손님들 대다수가 대통령 밑의 참모들이 대통령의 귀를 막고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사실 역대 대통령이나 지금 대통령이나 호남을 짓밟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얘기도 있다”라고 말했다. 광주 대인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정순씨는 “대통령을 찍어 준 호남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불평 한번 제대로 못하는 처지다. 정부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찍어 준 보람이 있는데 못한다는 얘기만 많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여전히 장년층 이상과 노인들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고 있다. 노점상을 하는 홍희조 할아버지(74·광주시 산수 2동)는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통령 밑의 참모들이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사사건건 야당이 물고늘어지니 정치가 제대로 되겠느냐”라며 김대통령을 두둔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최대의 위기로 거론되는 지금, 호남 지역민들은 국민의 정부에 실망하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아직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건강한 비판’조차 애정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내각제 무효화’를 볼모로 또다시 호남에 몰표를 요구할 것이다. 지역민들이 얼마만큼 바르게 투표하느냐에 따라 김대중 정부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라고, 내년 총선이 호남 민심의 거울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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