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신주류가 금배지 탐내는 까닭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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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 전진 배치하는 것 아니냐” 구주류 신경 곤두… 당정 개편 앞두고 복잡 미묘
청와대 비서실의 한 참모는 최근 동숭동 출입이 부쩍 잦아졌다. 20~30대들이 즐겨 찾는 재즈 카페나 연극 공연장을 누비며 요즘 젊은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가수 안치환씨의 노래 공연장에도 다녀왔다.

가뜩이나 청와대 업무가 버겁다는 판에 그는 무슨 이유로 틈만 나면 동숭동 거리를 헤매는 것일까? 그는 ‘총선 전략을 짜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역 성향이 약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20~30대 유권자가 내년 총선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되리라고 보고, 일찌감치 공략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각제와 16대 총선.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의 해’인 99년에 가장 관심을 쏟게 될 두 가지 핵심 화두다. 이 가운데 내각제는 어차피 상대인 김종필 총리와 풀어야 할 문제인 만큼, 청와대 참모진은 특히 총선 필승 전략을 짜는 데 전투력을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내각제 협상 면에서나 집권 후반기 정국 운용 면에서나 내년 총선 승리가 필수 조건이다. 밀리면 끝이다”라는 말로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총선 필승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국민회의의 전국 정당화와 당 체질 개선을 은연중에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2월 말로 예정된 각 부처 경영 진단 평가가 나오면 김대통령이 집권 1주년을 전후해 대대적인 당정 개편을 실시하리라고 보고 있다. 이 와중에 김중권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내 신주류를 당에 전진 배치하는 것 아니냐는 설이 흘러나와 구주류 진영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박지원 공보수석의 구로 을 재선거 출마 움직임이다. 청와대와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수석 본인이 출마를 원하고 있고, 김실장이 뒤에서 밀어 주고 있다고 한다. 신주류 내부에서는 벌써 박수석의 후임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회의 김 아무개 의원이 김실장으로부터 공보수석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이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대통령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박수석을 재선거에 내보내 당의 개혁 전사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당분간 자신의 입으로 더 잡아둘지, 김대통령의 뜻에 따라 몇 사람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그런가 하면 김중권 실장의 송파 갑 출마설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의원 직을 상실할 경우, 김실장이 재선거에 출마해 금배지를 단 후 자연스럽게 당에 입성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구주류측은 그동안 김실장이 경북 울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지역구를 바꾸겠느냐며 고개를 젓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이 어떤 구도로 갈지 예측 불허인 상황에서 김실장도 기회가 있을 때 의원 직을 가지려 할 것이다”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열쇠는 김대통령이 쥐고 있다. 박수석에 이어 김실장까지 재선거에 나선다면 이는 곧 김대중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이 될텐데, 과연 그 부담을 감수하겠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김대통령이 이번 재선거를 정치적 승부수로 삼을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안기부 사찰 의혹, 법안 단독 처리 등으로 얼룩진 집권 여당의 이미지를 탈색하고 새 출발하기 위해 대통령 스스로 재선거를 중간 평가 형식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1·2급 비서관 10여 명도 총선 준비

박수석과 함께 구로 을 출마설이 나돌던 이강래 정무수석은 큰 변화가 없는한 올 9월까지는 청와대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9월은 내년 총선에 입후보할 공직자들의 공직 사퇴 마지노선이다.

청와대 빅3이 재선·총선을 통해 당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16대 총선을 겨냥하는 1·2급 비서관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현재 차기 총선을 노리고 있는 비서진은 어림잡아 10여 명. 청와대 소속이라는 한계 때문에 드러내놓고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어떤 지역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공천 경쟁자는 누가 될지, 인지도를 어떻게 올려야 할지 머리를 굴리며 여의도 쪽으로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

김대통령은 최근 몇몇 측근이 모인 자리에서 “내년 총선이 현 지역구대로 갈 가능성은 전무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형태로든 지역구 재편이 있으리라는 예고다. 대대적인 선거제도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청와대 신주류들의 재선거 출마 움직임, 의원 출신 장관들의 당 복귀 여부, 전국 정당화를 위한 야당 의원 및 외부 인사 영입 등이 맞물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여권 핵심부의 내부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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