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지역 단체장, 법원으로 출근중?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1998.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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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단체장 6명, 송사에 휘말려 ‘행정 파행’… 국민회의의 ‘무소속 흠집내기’가 큰 원인
광주·전남 지역 시장·군수 들은 다 어디로 갔나? 지방 선거가 끝난 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광주·전남 지역은 박용권 광주 남구청장을 비롯해 여수 시장·구례 군수 등 기초 단체장 6명이 각종 범죄 혐의로 구속되었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표 참조).

단체장 고유 업무보다 송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이들 단체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크게 선거법 위반과 개인 비리. 우선 6·4 지방 선거에서 낙선한 상대 후보측의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경우는 임흥락 화순 군수, 전경태 구례 군수, 김대동 나주 시장. 이들은 선거 연설 때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금품을 살포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다. 주승용 여수 시장도 비슷한 유형이다. 주시장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에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 자체보다 3려(麗) 통합 과정에서 빚어진 과거 여수시와 여천 시·군 간의 갈등에다 국민회의 후보를 누른 무소속 단체장이라는 ‘괘씸죄’ 등 정치적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남의 특수성이 낳은 비극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들은 호남 지역의 특수한 정치적 지형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지역 ‘만년 여당’인 국민회의가 광역 단체와 대부분의 시·군을 장악한 상황이어서 국민회의 소속이 아닌 기초 단체장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광역 단체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6·4 지방 선거에서 낙선한 국민회의 후보의 단체장 ‘흠집내기’가 통할 수 있는 것이다.

단체장들 가운데 개인 비리의 대표적 사례는 박용권 광주 남구청장. 박구청장은 91년부터 화신상호신용금고 대표 이사로 재직하면서 2백4억여 원을 부정 대출받은 혐의로 12월1일 구속되어 지금까지 옥중 결재를 하고 있는 처지다. 박구청장은 지방 선거 때 ‘공천 헌금’을 낸 혐의도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흥식 장성 군수도 금품 2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이 구형되었다.

단체장들의 잦은 송사는 단체장의 고유 업무를 부실로 몰고 갈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화순군청 한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주민간·지역간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데 상대방 후보측 고소·고발 때문에 주민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체장이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려 자치단체 경영에 전력 투구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결국 지역민들에게 돌아간다”라고 지적했다.

단체장의 송사를 지켜보는 시민의 처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빈근 여수 경실련 집행위원장은 “주승용 시장이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에서 언제까지 시장이 한 달에 두세 번씩 재판정을 들락날락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라고 말했다.호남 지역 광역 단체장들도 지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광주시는 올해 어등산 개발 문제로 건설교통부·환경단체와 마찰을 빚었다. 한편 전남도는 시·군 간의 ‘해양 EXPO’ 유치 경쟁이 과열되어 시위성 집회가 계속되는 등 바람 잘 날 없는 형편이다. 특히 광주시는 오현섭 기획관리실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6·4 지방 선거 당시 고재유 광주 시장 후보를 찍어 달라며 금품을 전달했던 선거운동원이 구속되었다. 이래저래 고재유 시장은 마음이 편치 않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김대중 대통령이 표방하는 개혁과 비리 척결에 앞장서야 할 호남 지역 단체장들이 줄줄이 법정에 불려 가거나 업무를 소홀히해 지역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의 확고한 정치적 기반인 광주·전남 지역은 지방 선거가 끝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자치 행정이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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