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호남 후보 공천, 말로만 물갈이?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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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호남 물갈이 30% 선에 그칠 듯… 충성도가 1순위, “호남 볼모” 비판 목소리 높아
김봉호 국회 부의장(해남·진도). 5선 중진이지만 정부조직법안 날치기 처리의 주역을 맡았고 호화 외유로 물의를 일으키는 등 구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 있어 당초 호남 물갈이 1순위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지난 1월5일 청와대를 다녀온 후 그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부의장을 주저앉힐 만한 공천 신청자가 없다”라는 말로 재공천을 암시했다. 이정일 <전남일보> 회장 등 6명 정도가 신청했으나 역부족이라는 것. 김부의장이 재공천 고지의 8부 능선을 넘었다는 것이 당 안팎의 정설이다.

김홍일 의원(목포).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데다 건강도 좋지 않다. 당내에서도 그가 불출마해야 물갈이 명분이 선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그는 출마 의욕이 강하다. 그의 지역구에 조직책 신청서를 낸 경쟁자도 없다. 민주당의 한 소장 의원은 “그가 불출마하는 게 여러 모로 총선에 유리하지만, 그의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상 공천 확정.

두 사람은 민주당 호남 물갈이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물갈이가 물 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박찬주 의원(보성·화순). 유권자운동연합이 뽑은 3년 연속(1996∼1998년) 최우수 의원, 경실련이 뽑은 1996년 최우수 의원 6위. 그러나 전국구 한영애 의원이 이 지역에 조직책 신청을 하자 박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할 위협을 느끼고 있다. 당 안팎에서 전망하는 이 지역 전황은 ‘경합중’.

김영진 의원(강진·완도). 농림해양수산위에서 가장 뛰어나게 활약하는 ‘전문가형 의원’인 김의원도 완도에 비해 인구가 훨씬 적은 강진 출신으로 3선을 연임했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역시 차기 공천이 불투명하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 김삼웅 <대한매일신문> 주필, 황주홍 전 아태재단 사무부총장과 얽혀 치열한 물밑 경쟁중. 당내에서는 이 지역 또한 ‘경합’이라고 본다.

뛰어난 의정 활동을 한 이 두 사람이 ‘확정’이 아닌 ‘경합’으로 분류되면서 호남 물갈이의 순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충성파는 살리고, 백 없는 의원들만 가지 치기를 하면서 물갈이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민주당 처지에서 호남은 ‘공천=당선’이 보장되는 지역. 연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화갑 총장은 호남에 참신한 인물을 많이 공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도권 승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호남에서 대폭 물갈이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조직책 신청이 마감되면서부터 물갈이 전선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호남 물갈이는 30% 정도이고, 많아도 40%를 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예상되는 물갈이 숫자는 11∼15명. 15대 총선 때 현역 의원 40%(15명)가 교체되었던 것과 단순 비교해도 너무 적다. 더구나 지금 민주당은 여당. 수준 높은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새로운 피가 절실한 처지이다. 그러나 오직 충성심 하나로만 버텨온 ‘말뚝 의원’들은 이번에도 구제될 듯하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마땅한 대안이 없더라는 것이 물갈이 폭 축소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논리이다. 애초 얘기되던 절반 물갈이니 사상 최대 물갈이니 하는 말들은 쑥 들어갔다. ‘백’ 없으면 일단 물갈이 대상

현재까지 호남 지역에서 조직책에 임명된 사람은 정동영(전주 덕진)·정세균(전북 무주·진안·장수)·박광태(광주 북 갑) 의원. 모두 현역 의원이다. 이밖에도 정동채(광주 서)·김홍일(목포)·한화갑(신안)·최재승(익산 갑)·정균환(고창) 의원 등 경쟁자가 없는 5명은 조직책 선정이 거의 확정되었다. 이 중 정동영·정세균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범동교동계로 아우를 수 있는 의원이다. 대신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의원들 중 동교동계로 분류될 인물은 거의 없다. 권노갑 고문의 측근인 국창근 의원 정도가 거론될 뿐 나머지는 비동교동계이거나 백 없이 홀로 버티는 의원들뿐이다.

광주는 호남 지역 물갈이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지역이라는 점에서 6명 중 2∼3명 정도는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광주에서 최소 2명 이상은 바뀔 것’이라고 전했다. 누가 희생양이 될지는 모른다. 그런데도 당 안팎에서는 구체적인 물갈이 대상 의원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전남 지역은 현재 6∼9명 정도가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화갑 사무총장과 지역구가 통합되는 배종무 의원(무안)은 경쟁에서 사실상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순천은 조순승 의원의 부활 여부가 관심거리. 김성곤 의원(여수 갑) 교체설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정호선 의원(나주)과 국창근 의원(담양·장성)의 조직책 임명 가능성도 미지수. 정의원은 1996년 지방 선거 때 공천 대가로 2억원을 받은 혐의가 아직 재판에 계류 중이며, 국의원은 국회내 폭언과 호화 외유 물의를 일으킨 점이 여론을 악화시켰다. 이밖에 양성철(곡성·구례)·김인곤(함평·영광) 의원이 여론의 시달림을 받고 있다.

전북은 전남에 비해 물갈이 폭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채영석(군산 갑)·김진배(부안) 의원 등 2∼5명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윤철상 의원이 버티고 있는 정읍은 전북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 지역. 현역 윤의원에게 지역 연고를 주장하는 김원기 상임고문이 맞붙었고, 라종일 전 국정원 1차장 등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관전 포인트는 윤철상 의원과 김원기 고문 중 누구 손이 올라가느냐 하는 것. 김고문은 자신감을 비치고 있지만, 15대 총선 때 민주당과 국민회의로 갈라섰던 김고문과 동교동계의 ‘구원’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에 김고문이 최종 승자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박정훈 의원(임실·순창)은 연초 지역 여론조사에서 91.4%가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응답한 바람에 곤란한 처지에 처해 있다. 정세현 전 통일원 차관이 다크호스. 조찬형 의원(남원)은 이강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김태식 의원(완주)은 4선 중진이지만 최근 당내 역학 구도에서 멀어지고 있어 갈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다. 물갈이 시원치 않으면 무소속 돌풍 가능성 높아

이처럼 물갈이와 관련해 거론되는 의원들은 대략 15명 정도. 그러나 호남 물갈이가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주변만 치는 식으로 진행될 것이 유력해지자 반발 또한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한 영입 인사는 수도권이 어렵다면 호남이라도 과감하게 물갈이해야 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북일보>가 신년 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북 지역 주민 중 30.3%만이 현역 의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광주 지역 일간지의 한 기자는 “현역 물갈이가 시원하게 되지 않을 경우 지난번 지자체 선거처럼 무소속 돌풍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1998년 지자체 선거 때 광주·전남에서 무소속 후보가 7명이나 단체장에 당선되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런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지역 인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본격적인 호남 지역 조직책 임명은 2월 초에 가서나 있을 예정이다. 현역 의원 물갈이는 최대한 늦춘다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핵심부는 호남 선거를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 민주당이 몇몇 ‘말뚝 의원’을 이끌고 불 속으로 뛰어들지, 과감한 물갈이로 여론을 수용할지를 결정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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