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에 놀란 YS “공로명 내보내”
  • 吳民秀·李叔伊 기자 ()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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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공세 차단해 ‘치욕 재발’ 방지… 권력 투쟁 희생양일 수도
11월7일 오전 11시 정부종합청사 외무부장관 이취임식장. 공로명 전임 장관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 공씨는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전날 병원에 찾아온 외무부 관리를 통해 이임 메시지만 전달했다. 이기주 차관이 대독한 이임사에서 그는 <歸去來辭>의 한 대목을 인용해 심경의 한 자락을 이렇게 밝혔다. ‘지나간 일은 고칠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 오는 일을 쫓아야 한다는 심경으로 표표히 떠나고자 한다.’

그러나 공씨는 표표히 떠나지 못했다. 그가 떠난 뒤에도 언론과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돌연한 외무부장관 경질을 놓고 구구한 억측이 통제 불능 상태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39년간 몸 담아온 외무부를 떠나면서 도열한 후배 외교관들과 악수도 나누지 못하고, ‘지나간 일은 고칠 수 없다’는 묘한 말을 남긴 그가 경질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왜 외무부장관을 전격 경질했을까. 그리고 공 전장관이 이임사에서 밝힌 고칠 수 없는 ‘지나간 일’은 무엇일까. 항간의 소문대로 이미 다 밝혀진 47년 전 인민군 경력을 의미하는 말일까, 아니면 성급하게 사퇴 의사를 표명한 자신의 태도를 후회하는 말일까. 공씨를 전격 경질한 정부의 공식 해명은 딱 두 갈래이다. 즉 공씨의 건강 악화 및 인민군 복역이다.

우선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은 11월5일 저녁 공장관의 사표 제출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격무로 건강이 악화해 그만두게 되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청와대 안에서도 없다. 이러한 설명은 오히려 외무부장관을 경질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만 증폭시켰을 뿐이다.

소문은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 만큼 구구했다. 재외 공관 업무 및 대미·대북 외교에서 높아진 외무부 위상에 밀린 안기부의 반격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임명 및 아태경제협력체(APEC) 업무 수행과 관련한 외무부와 재정경제원과의 주도권 다툼설, 공 전장관과 청와대 이원종 정무수석과의 불화설, 외무부내 인사비리설과 부동산투기설을 비롯해, 심지어는 공씨가 ‘몹쓸 병’에 걸린 것 아니냐는 말까지 정가에 나돌았다.

조금 더 진전된 해명은 이수성 총리가 했다. 11월7일 국회 예결위에서 야당이 외무부장관 전격 경질 배경을 집중 추궁하자, 답변에 나선 이총리는 ‘아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운을 뗀 뒤, 11월2일 총리공관에서 자신과 공씨가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요컨대 공 전장관을 전격 경질한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의 인민군 복역에 대한 정부의 부담도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이총리의 답변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격 경질에 ‘작전’ 개입 가능성”

11월2일 공장관이 백내장 수술 후유증과 고혈압 증세를 호소하며 사의를 표명하자, 당황한 이총리는 적극 만류했다. 그러자 공장관이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곤하다’며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즉 6·25 때 자신의 인민군 복역 사실을 일부 언론이 다시 문제 삼으려 하고 있고, 이 사실이 확산되면 자신의 명예는 물론 정부에도 누를 끼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총리는 오히려 공장관을 위로했고, 11월4일 김대통령에게 공장관의 사의 표명 사실을 보고했다. 그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건강이 그렇게 나쁘냐’고 되묻고는 변함없는 신뢰감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총리의 해명은, 일단 공장관의 경질 배경을 둘러싸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던 온갖 억측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효과를 거두었다. 언론도 이총리의 해명에 대해서만큼은 별로 시비를 따지지 않고 있다. 적어도 이총리는 자기가 인지한 내용을 그야말로 아는 대로 솔직하게 밝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총리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우선 공장관 해임 하루 전인 11월4일까지만 해도 변함없는 신뢰감을 표명했다던 김대통령이 갑자기 사표 수리로 선회한 까닭이 불분명하다. 대체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권력 핵심부가 그토록 급하게 장관 교체를 전격 단행했느냐 하는 반응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문을 파헤치는 데서부터, 에이펙 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 외무부장관을 전격 경질한 ‘이례적인 사건’의 진상이 다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이 청와대 윤여준 대변인이 공장관 사표 제출 사실을 발표한 시점이다. 즉 공장관이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사전에 일부 언론에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윤대변인이 한 통신사 기자에게 최초로 사표 제출 사실을 확인해준 시점이 11월5일 저녁 6시께인데, 이때 배포하기 시작한 11월6일자 <ㅈ일보> 초판에는 이 사실이 보도되어 있었다.

즉 정부내 관측통들에 따르면, 11월5일 저녁 6시를 전후해서 공장관이 사표를 제출한 사실을 언론이 보도하려는 움직임을 긴급 보고 받은 김대통령이 ‘사표 수리’라는 최종 결심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공장관 사임을 공식 발표한 시점은 11월5일 7시께였다. 정부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사표 제출에 관한 정보가 일부 언론에 사전 유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거꾸로 공장관 전격 경질에 어떤 ‘작전’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대통령이 공장관의 사표 수리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가, 오직 언론의 보도 움직임만을 고려해서 외무부장관 경질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단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장관의 진퇴에 관해서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권력 핵심부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지난 10월 중순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 모임에서도 ‘공로명의 운명’에 관한 논의가 비공식으로 이루어졌다. 핵심은 역시 공장관의 인민군 전력. 요컨대 이 자리에 참석한 한 핵심 인사 입에서 ‘일부 언론이 공장관의 인민군 복역 사실을 재삼 문제 삼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공장관의 인민군 전력이 처음 공개된 것은 95년 2월호 <말>지를 통해서였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 힘들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복역’ 아닌 ‘부역’이다?

그렇다면 95년 2월 <말>지에 공장관의 인민군 복역 사실이 보도되었을 때는 별 탈 없이 넘어갔던 사안이, 이제 와서 새삼 ‘일사부재리 원칙’을 깨고 동일 인물인 공장관의 진퇴 문제로까지 비화할 파괴력을 갖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공장관이 경기중학교 5학년 때 인민군에 강제 징집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입대했음을 입증할 새로운 증거(또는 증언)가 나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부내 한 소식통은 “공장관의 진퇴 문제가 논의되는 자리에서 몇몇 인사들이 ‘복역’이 아니라 ‘부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라고 전했다. 부역이면 자원 입대한 의용군이라는 얘기다. 물론 두 용어의 차이를 모르고 쓴 말일 수도 있다.

둘째로는, 공장관을 밀어내려는 권력 핵심부 내의 ‘거대한 흐름’이, 인민군 전력 시비에다가 다른 요소를 보태서 김대통령에게 고민거리를 제공했을 가능성이다. 최근 공장관의 개인 비리를 적시한 정체 불명의 투서가 청와대 비서실에 계속 날아들었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밖에 안기부가 공장관의 인사 비리 및 공금 유용에 관한 내사 보고서를 경질 직전 청와대에 올린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장관 경질 발표가 나오자마자 ‘야당이야말로 진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장관 경질을 전후해 정치권에서는 야당에 투서가 전달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즉 누군가가 고의로 공장관에 대해 야당이 폭로할 가능성을 퍼뜨림으로써, 김대통령으로 하여금 사전에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공장관을 경질하도록 고도의 정치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야당과 외무부 일각에서는 공장관이 김대통령에게 ‘신임을 물으려고’ 사표를 제출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야당에 공장관에 관한 투서가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심지어 통일외무위 및 국방위 소속 국민회의 의원들은 11월7일 몇몇이 모여서, 투서 입수 소문이 근거없는 것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즉 야당의 공세에 밀려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을 불명예 퇴진시킨 것을 아직도 치욕으로 생각하는 김대통령을, 권력 핵심부내 일각에서 공장관을 ‘날리는 데’ 역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공장관이 경질된 직접적인 계기는 인민군 전력 시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업무상으로 외무부와 알력을 겪는 과정에서 공장관 스타일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권력내 특정 세력이 정치권내 역학 구도를 치밀하게 활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가에서 ‘공로명을 제거한 장본인은 이양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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