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표 획득"장담하는 국민승리 21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승리21’ 대선 참여 본격화…지지율 1% 불구 “백만표 얻겠다” 호언장담
‘진보 세력의 총집합체’를 자임하는 ‘국민승리21(준비위원회)’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9월29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데 이어, 울산·부산을 비롯한 지방 순회에 나서는 등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전국연합·진보정치연합을 주축으로 하여 결성된 국민승리21과, 이들이 내세운 권영길 후보는 대선 정국의 ‘뚜렷한 변수’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국민승리21이 권위원장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 지난 9월7일 이후, 언론기관이 실시한 각종 여론 조사에서 권후보는 1% 안팎의 극히 미미한 지지율을 얻었을 뿐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국민승리21 진영은‘내 갈 길을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존 정당에 못지 않은 민주노총·전국연합의 탄탄한 조직력, 기존 정치판의 구태에 식상해 하는 국민 의식 따위를 100% 활용한다면 예상치 못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승리21 유기홍 대변인은 “민주노총 회원 자체 표만 흡수해도 백만 표는 넘길 수 있다. 박찬종씨는 선거에서 1백60만 표를 얻어 정치 지도자로 떠오르지 않았는가. 게다가 우리에게는 전국에 6백 개가 넘는 지역 조직을 거느린 전국연합과, 자비를 내고라도 선거 운동을 돕겠다는 젊은 유권자가 많다”라고 주장한다.

국민승리21의 대선 참여 목표는 당장의 결실보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에 더 뜻이 있음이 분명하다. 대통령 선거라는‘열린 공간’을 한껏 활용해 노동 세력이 중심이 된 명실 상부한‘진보 정당’을 건설하고, 진보 세력을 정치 세력화한다는 것이다. 국민승리21측은 대선에서 백만 표 이상 얻을 경우 진보 정당 건설이 가능하리라고 판단한다.

진보 진영을 정치 세력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권위원장은 이에 대해 “과거 진보 세력의 대선 참여는 백기완씨의 경우처럼 명망가 개개인이 결집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세력들이 조직적 논의와 결의를 거쳐 대선 참여와 후보 추대를 결정했다”라고 강조한다.

정권 교체 아닌 ‘세력 교체’가 목적

국민승리21의 한 축인 민주노총은 올해 초 있었던 노동법 날치기 파동 이후 정당 건설이 필요함을 절감해 왔다. 민주노총측은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총파업을 벌여 정부·여당으로 하여금 날치기 법안을 철회케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재개정 작업이 정치권의 영역으로 넘어간 이후로는 철저하게 무력했다고 판단한다.
노동 시장의 변화와 경제 불안에 따른 노동 세력의 위기감도 진보 진영의 대선 참여와, 이를 통한 정치 세력화를 서두르게 한 이유다. 지난해부터 노동 시장에는 변형근로시간제·정리해고제 등 이른바 ‘유연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유연화 바람은 더 맹위를 떨칠 게 분명한데,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가는 노동 세력은 이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 그동안 이룩한 성과마저 내놓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이를 것이다”라고 권위원장은 잘라 말한다.

국민승리21측은 다른 후보들을‘이 땅에 정경 유착, 부패 정치, 지역 패권 정치를 뿌리 내리게 한 보수 정치인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한다. 기존 정치 세력들에 비해 때가 비교적 덜 묻었다는 점을 내세워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최대한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권위원장은 9월29일 민생 관련 기자회견을 끝낸 직후 가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나 자신이 정권 교체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또한 갈망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누구와도 손잡는 식의 정권 교체라면 누가 이를 진정한 의미의 정권 교체라고 말할 것이며, 구시대의 낡은 정치를 청산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인가.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권력을 담당할 정치 세력 교체를 주장하고 나섰다”라고 밝혔다.

“뛰지도 못하면서 날려 하는가” 비판도 나와

국민승리21이 선보일 정책이나 선거운동 방식도 기존 정치권과는 크게 다르다. ‘전·노 씨 사면 절대 불가’ 입장을 가진 국민승리21측은 당장 10월 초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서명운동도 개시해 전·노 씨 사면을 반대하는 유일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국민승리21은 대중을 상대로 권후보와 자기네 주장을 알리는 방법으로 노동자대회 등 대규모 집회를 모색하고 있다. 예컨대 국민승리21측은 오는 11월9일 정리해고·퇴직금 문제 등 ‘전공 분야’를 내세워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국민승리21측은 20만명 동원을 목표로 하는 이 집회를 계기로 삼아, 권후보가 노동자의 이익뿐 아니라 봉급 생활자 등 국민 전체의 민생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임을 알릴 방침이다.

권후보 진영의 이같은 포부가 과연 어느 정도 실현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비정치 집단이 지닌 정치 아마추어리즘 △주로 민주노총의 내력에서 기인하는 강성 이미지가 국민승리21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최대 걸림돌이 될 공산이 높다. 이 때문에 진보 진영의 정치 세력화를 찬성하는 쪽에서조차 국민승리21의 대선 참여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진보 세력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 국민승리21의 대선 참여는 뛰지도 못하면서 날기를 시도하는 것과 같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순서도 뒤바뀌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비판한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 역시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를 바람직하다고 여기지만, 국민승리21측이 호언하는 대로 백만표 이상 득표할지는 의문이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같은 주변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국민승리21측은 이번 대선을 결코‘남의 잔치’로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국민승리21은 오는 10월21일 출범식을 통해 국민승리21의 뒤에 붙은‘준비위원회’라는 꼬리표를 떼고 정치 세력화 장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