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들, 대권 향해 ‘겨눠 총’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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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이재오·정형근·홍준표, 변신 채비 정책 전문가 꿈꾸며 당권에도 도전
공격수들은 고스란히 살아 남았다. 한나라당 김문수·이재오·정형근·홍준표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공격을 시작했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목표였다. 3선 의원이 된 이들은 한목소리로 ‘집단 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총선을 거치며 당 장악력이 커진 박근혜 대표 체제에 도전한 것이다.

4월23일,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이번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30여명을 서울 여의도의 음식점으로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이의원은 “당에서 이들을 챙겨주지 않아 위로하는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했다. 다른 뜻은 없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의원이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벌써부터 최고위원을 노리며 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될 경우 이의원뿐 아니라 김문수·홍준표 의원이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이들은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변화한 상황에는 그에 맞는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당내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실력자들이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참모는 그만 하고 이끄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홍준표 의원이나, ‘앞으로 큰정치를 위해 나서겠다’는 이의원의 말에서 ‘야망’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홍준표 의원은 “박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 체제로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대표와 당내 주도권, 나아가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겠다는 의미이다.

16대 국회 때 대여 공격수로 맹활약했던 이들 네 사람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단단히 곤욕을 치렀다. 16대 때 국정원 도청 문건 등 각종 폭로를 주도해 폭로 전문가로 불리는 정형근 의원(부산 북·강서 갑)은 ‘사형수 대 공안검사’라는 구도를 짜고 거센 공세를 편 열린우리당 이 철 전 의원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선거 과정 내내 이씨에게 20% 가까이 뒤졌으나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경제 전문가라고 주장하며 밑바닥을 훑는 전략을 구사한 끝에 기사회생한 그는 “이번 선거는 정형근과 열린우리당의 치열한 대결이었다”라고 평했다.
‘저격수’ ‘폭로 전문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서울 동대문 을에 출마했던 홍준표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홍의원은 선거운동 쟁점을 동대문을 재개발하겠다는 등 정책 이슈로 돌리고, 저격수 논란에는 정면으로 대응해 열린우리당 허인회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는 법정 홍보물에도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의무라고 주장해 논란을 피해 가기보다 미리 무력화하는 정공법을 썼다.

지역구 관리를 잘 하기로 소문난 김문수·이재오 의원도 열린우리당 김만수·송미화 후보와 각각 접전을 벌였다. 이들은 힘겨웠던 총선 과정을 ‘선거운동 한번 제대로 해봤다’고 압축해 표현했다.

홍의원은 4월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제 저격수에서 은퇴하겠다”라고 선언했다. 17대 국회에서는 더 이상 공격수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벤트 정치가 아닌 내실을 기하는 정치,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홍의원은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표·남경필 의원 등 한나라당 소장파도 이벤트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문수 의원은 한나라당이 이념적으로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인들과 영남권,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청년화하면서 중도적인 쪽으로 축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오 의원은, 공격수 논란은 권력이 부패했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산물이라며 개인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싶은 이가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이 구상하는 17대 활동은 ‘공격수’와는 거리가 멀다. 정형근 의원은 경제 전문가 이미지를 갖추는 데 더욱 주력할 예정이다. 청년 실업, 다단계 판매 등을 주제로 2003년 6월부터 열한 차례 열었던 ‘열린정책토론회’도 곧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16대 때 정무위원회에서 일한 그는 정무위원장을 노리고 있다. 4월25일 아침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과 텔레비전 토론을 벌이는 등 폭로는 안하는 대신 할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문수·이재오·홍준표 의원은 정책 전문가 이미지를 키우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이 의원은 이미 한차례 당 대표 경선에 도전한 적이 있다. 김의원은 “우리 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선진국이 되어 그 혜택이 국민에게 나눠지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 내 꿈이 헛되냐 아니냐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각자 이명박·손학규와 특별한 관계 유지

이들이 ‘경쟁자’인 박대표와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도 관심사이다. 현재대로라면 박대표와 가장 뚜렷하게 각을 세우는 것은 홍의원과 이의원이다. 이의원은 “박대표를 중심으로 해서 보수 일변도로 갈 것이냐, 아니면 개혁적인 보수, 즉 중도 노선으로 갈 것이냐를 놓고 당내 투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김의원은 박대표와의 관계를 묻자 ‘담담하다’고 표현했다. 잘못하면 비판하고 잘하면 돕겠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박세일·윤건영 당선자 등 박대표가 영입한 교수 그룹과 고교 동기나 동아리 후배 등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어 아주 가까운 사이다. 정의원과 박대표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정의원의 측근은 2002년 3월 정의원이 후원회를 개최했을 때 박대표가 축사를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나쁜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4인과 박대표의 관계가 주목되는 이유는 앞으로 한나라당의 대권 구도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들 스스로도 야망을 키우고 있지만, 이재오·홍준표 의원은 당내에서 ‘이명박 사람’으로 통한다. 이의원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이명박 시장의 선대본부장을 했고, 홍의원은 이시장과 미국 유학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이시장과 연결해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김문수 의원은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친하다. 두 사람은 17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손발을 맞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일원에 한현규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 등 이른바 ‘손학규 사단’이 대거 공천된 데에는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반면 정형근 의원은 이시장·손지사와는 거리가 있다.

‘공격수 4인’이 17대 국회에서 이미지를 바꾸어 거듭날지는 두고보아야 한다. 전에도 그런 다짐을 했으나 지키지 못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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