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계 내분…최형우·김덕룡 깊은 갈등
  • 崔 進 기자 ()
  • 승인 1997.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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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의 민주산악회·김덕룡의 6월회 ‘세 과시’ 경쟁…갈등·불신 점점 깊어져
한보 터널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대선 자금 터널에 들어섰다. 그리고 전당대회 7월 조기 개최와 대통령의 경선 불개입 선언. 한결같이 민주계에는 악재들이다.

민주계가 회생할 길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똘똘 뭉치면 된다. 전국 지구당위원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민주계가 하나로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민주계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고 모인다. 6월회·민주산악회·민주화세력모임·민주계 중진 모임….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민주계의 양대 축인 최형우·김덕룡 의원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임 하나. 4월29일 오전 11시께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민주계 인사 6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민주계 모임으로는 현정권 들어 최대 규모인 이 날 행사는, 95년 4월5일 창립 총회를 열고 출범한 6월회의 제3차 정기 총회. 초대 회장은 소설 <남부군>의 저자로 유명한 이우태씨(필명 이 태)였다. 이씨는 민주산악회 헌장을 만들었고, 딸 지혜씨는 <민주산악회가>를 작곡했다. 이 날 총회에서 유성환 전 의원을 2대 회장으로 선출한 6월회는, 이민우 최형우 서석재 김덕룡 이원종 강삼재 김무성 같은 회원 명단의 면면에서 보듯 민주계를 총망라했다. 이 날 모임은 김덕룡 의원 등 몇몇 민주계 중진 의원을 제외하면 눈길을 끌 만한 회원이 대부분 불참한 탓인지 세간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최형우 측근 “김덕룡계가 민주산악회 음해”

그러나 이 날 모임은 민주계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 즉 현재의 정서와 내부 갈등 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유성환 회장이 인사말에서 “우리가 패배하면 문민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라고 말했듯이 모임은 시종 무겁고 비장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유회장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지도자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인지 알지요?”라고 묻자, 참석자들은 말 안해도 안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는 점이다. 자연히 관심의 초점은 6월회의 배후가 누구이며, 영원한 지도자가 누구를 의미하는지에 모아졌다.

이와 관련해 최형우 고문 진영은 김덕룡 의원을 지목했다. 김의원이 최고문측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유야무야하던 6월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김의원 진영은 이번 행사를 성공리에 끝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심지어 김의원 진영에서 ‘여기 최형우 캠프인데, 이번 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는 식으로 최고문을 사칭하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최고문측 주장이다.

최고문측은 행사에 소극적이었다. 일부는 적극 반대했다. “민주산악회가 있는데 굳이 6월회를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산악회를 견제하고 약화시키려는 의도이다. 우리는 6월회 설립을 처음부터 반대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주산악회 간부이며 최고문 핵심 측근인 인사의 말이다. 최고문의 일부 측근은 자파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만류했으며, 어떤 사람은 행사장 주변에 숨어 누가 참석하는지 체크까지 했다고 한다. 최고문의 핵심 측근, 특히 민주산악회 핵심 맴버들은 행사에 대부분 불참했다.

최형우·김덕룡 의원 사이의 갈등은 민주산악회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정권 출범 직후인 93년 일이다. 민주산악회 회원들이 왕릉 유적지 잔디밭에 들어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근처 인삼밭에 들어가 인삼을 캐먹었다는 보도가 일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매우 노한 김대통령은 즉각 민주산악회를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은 민주산악회가 정권 출범의 팡파르를 울리자마자 해체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민주산악회 사람들은 당시 현장 사진을 찍어 언론에 제보한 범인이 김덕룡계 사람이라고 지금껏 믿고 있다. 불신의 골은 이렇게 깊다.

김덕룡계, 민주산악회서 이탈 조짐

최고문의 사조직이라고 하리만큼 최고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민주산악회가 최근‘작은’분열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소수파인 김덕룡계가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경기도 지부의 경우 95년 동서부가 통합했는데 서부 쪽이 다시 분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수원·성남·부천 등 서부 지역은 김덕룡계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고문이 쓰러진 직후 3월 말 강남 뉴월드호텔에서 열린 민주산악회 전국 지부장회의 때 일이다. 최고문의 대리인 격인 김정수 의원은 “여러분, 최형우 고문이 누구 때문에 쓰러진 줄 아십니까”라며 노골적으로 김덕룡 의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민주산악회는 4월17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가질 예정이던 식목 행사를 세 차례 연기한 끝에 무기한 미루었다. 한보 사태에 따른 비판 여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6월회 행사가 성황리에 끝나자 당황한 민주산악회는 연기했던 시산제를 재추진키로 했다. 때는 5월27일 오전 11시, 장소는 계룡산 갑사. 전국 3백여 지부에서 2만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산행이다. 민주산악회 한 간부는 “우리의 힘을 보여주겠다”라고 단단히 별렀다.

최고문과 김의원은 사사건건 부딪쳐온 처지이다. 최고문이 현철씨와 가까운 반면, 김의원은 극도로 불편한 관계다. 자연히 현철씨 문제를 푸는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권에 대한 그림도 크게 다르다. 최고문 진영이 내부 주자 추대를 사실상 포기하고 영입 작업에 나선 반면, 김의원은 대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차 하면 독자 행보를 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마저 던지고 있다. 당연히 최고문측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민주계의 양대 주주인 두 사람이 손을 잡느냐,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느냐에 따라 민주계의 운명, 나아가 김대통령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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