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 뒤흔든 초선 의원 6총사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6.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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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의원 6인, ‘송곳 감사’로 스타 떠올라… 정부 질타·대안 제시에 여야 구별없어
과거의 국정감사가 주로 야당 의원들의 독무대였다면,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여야 구분 없이 초선 의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초반부터 북한 무장 간첩 침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당초 여야간 대선 전초전이 되리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분위기가 ‘안보 국감’으로 흐른 탓도 있다. 즉 정치 논리에 따른 여야 중진들의 공방전은 다소 맥이 빠진 반면,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는 초선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80년대 내내 노동 현장에서 청춘을 보낸 신한국당 김문수 의원은, 자기 전공 분야라 할 수 있는 노동환경위에 일찌감치 둥지를 틀었다. 비서진도 모두 노동운동계 후배들로 채웠다. 당 지도부가 김의원을 환경노동위 터주대감인 국민회의 이해찬 의원의 호적수라고 자랑하는 데에는, 바로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비서진의 ‘현장 감각’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번 국감에서 김의원 팀은 마치 노동운동을 하듯이 구석구석을 발로 뛰면서 현장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정책 대안에 반영해 제시하는 기량을 발휘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지역구인 부천 소사의 수도꼭지로부터 팔당 상수원까지 50㎞에 달하는 상수도 흐름의 전과정을 거슬러올라가면서 답사한 결과를 내놓아 공무원들을 긴장시켰고, 노동운동권으로부터도 외면 당하는 영세 사업장의 근로 조건 문제를 틈 나는 대로 따졌다.

통상산업위 맹형규 의원은 정책 대안 제시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SBS 앵커 출신인 맹의원은,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전력 감사 때 내놓은 ‘21세기 원자력발전 청사진’이라는 보고서. 미국의 원자로 설계를 그대로 복사한 한국형 원자로로는 기술 자립이 요원할 뿐더러, 99년 원전 시장 개방 때 무방비 상태가 되리라는 지적이다. 또 맹의원은 통상산업부 감사에서 박재윤 장관의 업무 스타일을 전시 행정의 전형이라고 호되게 몰아붙임으로써, 오히려 야당의 기선을 제압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쟁점을 상실한 이번 국감에서, 최대 화제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내무위 스타로 떠오른 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이다. 추의원은 한총련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을 서울경찰청 국감에서 가감 없이 폭로함으로써, 여야 간에 국회에서 의원의 표현의 한계라는 희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문제는 여야의 대변인 성명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경험 풍부한 비서진이 든든한 뒷받침

공방전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추의원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인권 침해 문제에서만큼은 타협이 있을 수 없다”라며 국정감사 차원을 넘어선 지속적인 조사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추의원은 여학생 성추행 발언 파문이 예상외로 커지는 통에, 다른 성과들이 빛을 잃는 손해를 보고 있다. 사실 이번 국감에서 추의원이 초점을 맞춘 것은 정치 자금에 관한 법률을 포함한 제도 개선 문제. 내무위가 정치 상임위라는 점을 감안해서 내년 대선을 겨냥한 길 닦기에 나선 셈인데, 추의원은 법조인 출신다운 ‘송곳 질의’로 내무부 관료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국민회의 설 훈 의원은, 낙선한 14대 교육위 3인방(김원웅 박석무 홍기훈)의 빈 자리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경우. 특유의 전투력을 살리려는 당 지도부의 권유를 마다하고 교육위를 자원한 설의원은, 예기치 않은 폭로성 질의와 탄탄한 자료 조사로 교육위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그는 서울대 수능시험 결과 유출 의혹을 제기해서 교육부로부터 수능 성적 공개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고, 전국민의 관심사인 일선 학교 내신 성적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설의원은 교육위 경험이 풍부한 비서진을 스카우트한 점과, 동교동 가신으로서 정치 경험이 오랜 것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고 있다.

역시 동교동 가신 출신인 문화체육공보위 정동채 의원은 차분하고 꼼꼼한 준비와 질의로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그는 이번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두 가지 보고서를 펴냈다. 청소년 문제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청소년청 신설을 주장했고, 전국 신문 방송 학자들을 상대로 벌인 공보처 기능 재조정에 관한 여론조사 보고서에서는 공보처를 폐지하고 총리실 산하에 공보실을 신설해 국가 홍보 기능만을 전담케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건복지위 소속인 민주당 김홍신 의원은 국감 기간 내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김의원은 국감 첫날 기자회견을 통해 시판되는 조제 분유에 발암 물질인 DOP가 기준을 초과해 들어 있다고 주장했고, 국감장에서는 안전하다는 복지부의 결론이 엉터리였음을 질의 응답을 통해 입증해내는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김의원은 중점 점검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국정감사 사전예고제를 도입해 시선 끌기에 성공했다. 물론 김의원의 이러한 맹활약 뒤에는 14대 때부터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비서진이 버티고 있다. 영아 태반 불법 거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 주변 잠복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 비서진이야말로, 스타를 만들어내는 막후 연출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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