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단체들, 정치세력화 ‘봇물’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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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도 주전으로 뛴다”…지자체 선거 입후보 등 계획
일개 단체 행사에 금배지 5개가 떴다? 지난 4월24~25일 충남 조치원청소년수련관에서 치러진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국민의힘) 창립 1주년 기념 행사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5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국민의힘 초대 대표를 지낸 정청래(서울 마포 을)를 비롯해, 김원웅(대전 대덕) 양승조(충남 천안 갑) 박상돈(충남 천안 을) 오시덕(충남 공주·연기) 당선자가 그들이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또한 이 행사에 불참한 대신 동영상을 통해 창립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치 개혁·언론 개혁을 위해 창립한 시민단체임을 표방한 국민의힘이 이렇게까지 눈길을 모은 이유는 한 가지. 노사모에서 분화해 나온 뒤 이 단체가 친노(親盧) 세력의 전위대 내지는 행동대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총선 이후 정치 세력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공동대표 이상호씨는 창립 1주년 행사에서 “우리를 더 이상 서포터즈라고 부르지 말라. 이제부터는 우리도 주전으로 나서겠다”라고 선언했다.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접고 국민의힘을 정치 기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정치 세력화 1단계 프로젝트로 오는 2006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국민의힘 출신이 대거 입후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비 정치인 키울 정치 아카데미도 세우기로

이들이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로’ 장을 바꾸어 진출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계기는 두 가지로 보인다. 일단은 열린우리당의 보수화에 맞서 더 선명한 개혁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상호씨는 “이제까지 우리는 ‘열린우리당 2중대’라는 공격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열린우리당은 개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앞으로는 개혁 의회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 나서 채찍을 들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중앙 의회를 장악한 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국민의힘 탄생에 산파 역을 한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이번 총선 기간에 영남 지역 지원 유세를 다니며 많이 갑갑했다. 지방 의회며 지방 행정을 지역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한 역사는 또다시 후퇴할 수 있다”라며, 국민의힘 출신들이 풀뿌리 정치에 적극 뛰어들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국민의힘은 조만간 ‘정치 아카데미’(가칭)를 설립하겠다는 구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통해 풀뿌리 인재들을 양성했듯 국민의힘 또한 이 기구를 통해 이론·실무에 밝은 예비 정치인을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친노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www. seoprise.com) 또한 총선이 끝난 뒤 정치학교(가칭)를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프라이즈 대표 서영석씨는 “돈과 조직에 의존해 치르는 선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예비 정치인에게 연구와 교육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라며 정치 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들 친노 단체가 응원복을 벗고 선수복을 입고 뛰겠다는 데 관심이 가는 것은 이들이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과 맺고 있는 미묘한 관계 때문이다. 그간 열린우리당을 전폭 지원했던 이들은 총선 이후 언론 개혁 등 개혁 의제를 우선적으로 실천하라며 당을 압박하고 있다. 정동영 의장이 내세운 실용주의 노선은 이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다. 열린우리당 내 노선 다툼이 최악의 방향으로 치달을 경우 이들은 분당을 엄호하는 외곽 기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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