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상임위 ‘이변 속출’ 예감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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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급 위원장 탄생할까…위원회 수 늘어날 가능성도
새내기 당선자는 대학 신입생과 닮은 데가 있다.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나서 기숙사를 배정받고 동아리를 고르듯 국회의원 당선자 또한 의원 등록을 끝내고 나면 의원회관을 배정받고 상임위를 선택해야 한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좋은 방을 차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전문성을 키우고 의정 경험을 쌓으려면 이보다 핵심적인 것이 상임위 선택이다.

과거 보스·계파 정치가 살아 있던 시절에는 의원 개개인의 ‘선택’을 압도한 것이 당 지도부의 ‘낙점’이었다. 당 지도부는 지역·계파 따위 안배와 총재에 대한 충성도를 감안해 상임위를 배정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상임위원장은 여야간 정략에 따른 나눠먹기의 대상이다.

이런 구태가 17대 국회에서는 청산될 수 있을지 관심사이다. 상임위가 확정되기까지는 아직 변수가 많다. 먼저, 국회의원 수가 늘어난 만큼 상임위별 의원 정수 또한 조정되어야 할 텐데 이를 어떻게 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17개인 상임위를 조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환경노동위·정무위 세분화 △여성위 폐지 등 여러 대안을 열어놓고 논의 중이다.

여야가 이런 내용을 놓고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가려면 5월 말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5월11일, 한나라당은 5월19일에야 원내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물밑 대결은 치열하다. 특히 중진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고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이번 17대 국회에서는 전에 없던 ‘관행 파괴’가 속출할 전망이다.

일단 3선급 이상이 상임위원장을 맡던 기존 관행과 달리 경량급 위원장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테면 법사위의 경우 16대 때는 전체 15명 중 2명(천정배·최용규)만이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다. 그런데 이 중 천정배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면서 차기 위원장감이 묘연해졌다. 여당 중진 중 법조 출신이 드물다 보니 과기정위 소속인 이종걸 의원을 법사위에 투입하자는 안도 나오고 있지만 그래보았자 최용규 의원과 같은 40대 재선이다.
그렇다고 법사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열린우리당이 이 자리를 야당에 넘겨주기는 쉽지 않다. 원내총무가 당연직으로 겸하게 되어 있는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정보·국방·통일외교통상·재경·행자·법사 위원장은 전통적으로 여당 몫이었다. 그렇다면 17대에서는 40대 여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50~60대 야당 중진 이 그 지시를 따르는 진풍경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민주노동당의 전략 거점인 환경노동위, 언론 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루게 될 문광위는 개원 이후 최고의 화제를 양산할 상임위로 점쳐지고 있다. 언론에 노출 빈도가 많은 만큼 이들 상임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도 예상된다.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본인 희망을 고려해 당내에 ‘일하는 국회 준비위’ 5개 분과를 꾸렸는데, 여기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경제·노동 분과(46명)와 교육·과학·사회·문화 분과(32명)였다. 이는 희망 상임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물 좋기로 소문 났던 상임위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시들한 편이다. 선거법 개정으로 돈 쓸 일은 적어진 대신 검찰의 수사 표적이 되는 등 위험 부담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4·15 총선에서도 눈에 띄는 특징이, 이들 상임위에서 활동하던 중진들이 일제히 된서리를 맞았다는 것이다. 총선 결과를 분석해본즉 3대 노른자위 상임위로 꼽혀온 재경위(39%)·건교위(36%)·정무위(38.9%) 소속 위원의 생존율은 모두 40%대를 밑돌았다. 전체 18명 중 4명(22.2%)만 살아 남은 국방위, 23명 중 3명(13.0%)만 살아 남은 행자위 또한 ‘저주받은 상임위’라 할 만하다.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여야간 교섭 결과 상임위가 늘어나면 초선급 상임위원장이 탄생할 수도 있다. 만약 상임위가 19개로 늘어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도 각각 1석씩을 요구할 여지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초선인 민주노동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의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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