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몸은 'DJP' 마음은 'DTJ'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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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 안될 경우 DTJ 선택… 대선 필승 카드 ‘호남+충청+TK’
김대중 총재가 ‘체인징 파트너’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오래된 연인 JP보다 새로운 인물 TJ(박태준 전 포철회장)에게 더 마음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 4수에 도전하는 김총재는 올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은 DJP 연합밖에 없다고 굳게 믿어 왔다. 그가 당내 비주류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론을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꾸려는 이유도 다 ‘연인인 JP가 원해서’였다.

그런데 박씨의 정계 복귀가 DJ의 대권 전략에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대구·경북 세력이 박씨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결집하면서 야권 구도가 DJ·JP·TJ의 삼각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올 대선에서 대구·경북 지역은 DJ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그동안 틈만 나면 이 지역을 방문하는 등 TK 민심 추스르기에 유난히 공을 들여 왔다. 이 지역에 팽배한 반DJ 정서를 중립으로만 바꿔놓으면, DJP 공조를 통해 TK표를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DTJ가 DJP보다 명분·실리에서 더 유리”

사실 밀고 당겨야 할 협상 대상이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DJ에게 박씨의 등장이 그리 달갑지 않다. 하지만 국민회의는 박씨의 정계 복귀를 내심 반기고 있다. 실보다 득이 많으리라는 판단에서다. DJ는 박씨가 DJP 공조에 확실한 촉매제가 될 수도 있고, DJP가 깨질 경우 최소한 JP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DJ의 처지에서 올 대선의 필승 카드는 호남+충청+TK다. 그런데 박준규·박철언·김복동으로 이어지는 자민련내 TK 주자들은 ‘TK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취약했다. 이 약점을 박씨가 확실히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국민회의측 판단이다. DJ는 DTJ만 되면 여권이 진짜 TK론을 외치고 있는 이수성 카드를 내놓더라도 대구·경북 표가 크게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본다. 내부적으로는 DJP 공조에 회의적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인사들의 마음을 돌려 DJP를 확실히 묶는 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DJP가 안될 경우 박씨가 JP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DJ측 계산이다. DJ 측근들은 오히려 이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눈치다.

JP는 최근 들어 부쩍 독자 출마 발언이 늘었다. 그는 “DJ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충청도 사람들이 (DJ에게) 자꾸 양보한다고 싫어한다”라고 말해, DJ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꾸준히 내비치고 있다.

이런 JP 태도에 DJ측은 JP가 ‘충청도 지킴이’로 자기 역할을 굳힌 것 같다고 해석한다. 87년 대선 때처럼 이번에도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충청도 지분을 확보하려고 독자 출마를 강행하리라는 것이다.

DJ측은 이미 DJ-JP와 DJ-TJ의 이해 득실을 따져본 후 결론을 내린 상태다. 박씨와 손 잡는 것이 명분·실리 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우선 박씨와의 연대는 지역 갈등의 최대 피해자인 호남과 가해자인 대구·경북이 공조한다는 점에서 명분이 확실하다. 유권자 수만 계산해도 충청표보다 대구·경북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 더욱이 이회창 대표가 여당 후보로 나서게 되면 JP의 충청표가 대거 여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대구·경북 지역은 TK를 대표하는 마땅한 주자가 없는데다 YS에 대한 반감이 워낙 높아 여당으로 유입될 표가 그리 많지 않다.

얼마 전까지 DJP 단일화를 위해서라면 선거 하루 전까지도 협상하겠다던 DJ가 최근 들어 “늦어도 7,8월까지는 단일화 협상을 끝내겠다”라고 못박은 것도, 만약의 경우 박씨와 협상할 시간을 벌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모든 가설은 다 박씨가 DJ를 전폭 지지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박씨는 확실히 DJ편인가?

DJ의 한 측근은 박씨가 정계에 복귀한 후 여러 차례 언론과 인터뷰했는데 그때마다 DJ를 높이 평가했다며, 오랫동안 DJ가 박씨에게 공들인 효과가 이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의원을 TJ 선거 참모로 파견

DJ와 박씨는 6대 국회에서 함께 재정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여야로 나뉘어 있었기에 특별한 교분은 없었다. DJ가 박씨에게 처음 구애한 때는 92년 대선 무렵. 그는 YS를 마다하고 탈당한 박씨를 영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YS 정권 출범 후 박씨가 일본으로 쫓겨가면서 DJ의 박씨 챙기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이동진 아태후원회장을 통해 박씨에게 물심 양면으로 격려를 보냈다.

지난해 박씨의 칠순 잔치 때는 DJ가 시루떡과 장미 일흔 송이를 보냈으며, 94년 박씨의 모친상에는 대형 화환을 보내 위로하기도 했다. 박씨는 그때마다 감사하다는 뜻을 DJ에게 전했다.

그동안 물밑 지원만 하던 DJ는 포항 보선에서 박씨를 노골적으로 지원할 작정이다. 김민석 의원을 박씨의 선거 참모로 파견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물론 김의원의 박씨 지원은 두 사람 간의 개인적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DJ의 재가 없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JP 대신 박씨를 택하는 체인징 파트너는 DJ에게 상당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충청표도 대구·경북 표도 떨어져 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측이 JP의 독자 출마 발언에 대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애써 너그러움을 보이는 것도 가능한 한 JP를 끌어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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