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성명’ 약효 실종 전씨측 돌파구가 없다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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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약점 공격도 무위, 전씨측 대응 논리 ‘궁색’
신군부 인사들이 자주 입에 담는 얘기가 있다. “제5공화국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출범하지는 못했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의 소산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군 내부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그것을 수습하다 보니 군권을 장악하게 됐다. 그런데 권력 공백기를 틈타 그동안 끊임없이 대한민국 체제의 정통성에 도전해온 좌익 세력들이 발호했다. 때묻은 기성 정치인들은 집권을 위해 그들을 지원하거나 방관했다. 북한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당에, 이런 지극히 위험한 사회 혼란 요인을 제거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정권까지 잡게 됐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얘기이다.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속된 몰락 과정을 살펴보면, 불가피한 시대 상황의 소산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군부 쿠데타의 선배 격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군부 세력에게 남긴 교훈은 두 가지였다. 군이 나서면 성공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과, 잘못하면 말로가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대통령의 집권과 통치 방식을 철저하게 모방하는 동시에 그가 몰락한 것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이들은 군부 세력 퇴각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고 서서히 몸을 뺐다. 전씨는 단임 약속을 지켰으며, 노씨는 야당 지도자의 한 사람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특히 신군부 세력의 ‘수괴’인 전씨는 업보에서 벗어나기 위해 험난한 통과 의례도 치렀다. 그는 2년 넘게 백담사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 5공 청문회 때는 국회 증언대에 서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들이 몰락한 원인을 따져보면 3당 합당 시기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14대 총선에서 대패한 여권은 여소야대 상황을 뒤집기 위해 정계 개편을 검토했다.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수뇌부가 그들의 보신을 위해 채택한 최선의 방식은 호남의 맹주이며 5·18의 최대 피해자인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손잡는 것이었다.

지난 지방 선거 때 김총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여권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밀약이 끝난 상태에서도 김총재에게 끊임없이 손짓했다. 김총재만 승낙하면 언제라도 김영삼씨와의 밀약을 백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김대중 총재가 거절해 협상은 깨지고 이 때부터 김대통령과 구여권은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다. 만약 그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대중 총재와 손을 잡았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김총재가 ‘학살 원흉’과 손잡기는 쉽지 않았다.

여권의 불안한 동거는 내각제 각서 파동과 노태우 대통령의 중립 내각 선언으로 이어졌다. 김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구여권 세력과 언제라도 결별할 명분을 축적했다.

이념 논쟁으로 보수세력 결집 노려

김대통령 취임 후 얼마간은 신군부 세력이 그들의 보신을 위해 쏟아온 노력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과거사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선언해 신군부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김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렸다. 김대중·김종필 양김씨의 부활로 6·27 지방 선거에서도 대패했다. 부정 부패로 김대통령에게 부담을 안긴 여당내 구여권 세력들은 오히려 김대통령을 압박했다. 총선을 앞두고 다수파인 민정계는 권력을 나눠주지 않으면 결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사면초가에 몰린 김대통령은 구여권 세력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노씨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상황을 반전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는 신군부 세력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불가피한 시대 상황을 등에 업고 신군부 세력과 손잡은 자신의 허물을 벗어던졌다. 지금 김대통령과 민주계는 전씨가 정승화 참모총장 수사를 빌미로 군권을 장악했듯이 5·18 특별법 제정을 명목으로 민자당을 완전한 YS당으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김대통령과 민주계는 이번 기회에 그들이 추진해온 개혁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한 반개혁 세력을 모조리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전씨와 노씨 등을 반개혁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비슷한 성향인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나 이들과 손을 잡을 움직임을 보였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도 거세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 사회에 불안을 조성하는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때묻은 정치인을 모두 몰아내겠다는 신군부의 착상과 닮은 점이 있다. 김대통령과 민주계는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차기 정권 창출도 무난하지 않겠는가라고 보는 것 같다.

전두환씨는 지난 12월2일 이른바 골목 성명에서 “검찰의 태도는 더 이상의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전씨의 말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필요라는 것을 전씨 스스로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신군부 세력은 정치 위기에 몰릴 때마다 대국민 사과문이란 것을 발표하곤 했다. 전씨는 백담사에 가기 전, 노씨는 구속되기 전 각각 성명을 냈다. 그러나 두사람은 12·12와 5·18 자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적은 없다. 그들이 집권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희생되고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만 유감을 표시했을 따름이다. 그들 스스로 불씨를 남겨놓은 셈이다. 정치권은 언제라도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 불씨에 성냥만 그어대면 불이 활활 타오르게끔 돼 있는 상황이었다. 전씨와 노씨는 정치권의 동향에만 민감했을 뿐 일반 정서 속에 얼마나 폭발성 강한 분노가 축적돼 있는지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과거 국민들의 뇌리에 남을 만한 사과를 했다면 김대통령도 그들을 이렇게까지 쉽게 사법 처리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 이들이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만 해도 그렇다. 11월30일 신군부 핵심의 한 사람인 허화평 의원은 국회 신상 발언에서 “80년 당시 민주화 세력들이 분열하지 않고 과격한 민중 전술을 동원하지 않았던들 5공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는 또 “이 나라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는 좌파들이 양심 세력으로 위장하면서 12·12와 5·18을 투쟁 고리로 삼아 군을 무력화하고 건국 이래 이 나라를 키워온 보수 우익 세력에게 일대 타격을 가함으로써 국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전씨 역시 골목 성명에서 “현 정부가 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 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 방향”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의 주장은 결국 현 정국을 주도하는 세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아닌, 남한 체제 전복이라는 것이다.

원죄의 짐에 눌려 명분 싸움 실패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논리가 허약했다. 우선 현 정국을 어떤 세력이 주도하고 있건 그것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설혹 북한이 그들의 죄를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죄가 가벼워질 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좌익의 운동 방향과 마찬가지로 유행이 지난 것이었다. 단지 그들이 과거 어떤 식으로 이 사회를 몰고갔는지 상기시켜 줬을 따름이다. 검찰 쪽에서는 전씨가 이런 성명을 발표해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는 바람에 오히려 구속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신군부의 몰락은 전적으로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역사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군부 세력은 그동안 12·12와 5·18이라는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처방을 내렸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용을 쓰면 쓸수록 일은 자꾸 꼬이기만 하는 형국이었다. 폭탄 선언을 하느니, 신당을 만들어 정치 공세를 펴느니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뚜렷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신군부가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그런 내란 세력과 야합해온 김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군부를 단죄한다고 해서 김대통령의 어깨가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는다는 얘기이다. 신군부가 내세우는 온갖 명분과 그들의 죄가 별개이듯이 김대통령의 단죄 의지와 허물도 서로 다른 문제이다. 이런 점을 무시하면 앞으로 신군부 단죄를 포함한 김대통령의 모든 정치적 시도들도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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